책이야기

57두근두근 내인생-김애란

짱구쌤 2012. 12. 30. 22:58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

[두근두근 내 인생 / 김애란 / 창비 ]

처갓집에 주렁 주렁 열린 감 따러 가야하는데 간밤에 내린 비님 덕분에 출발이 내일로 미뤄지고 덕분에 오늘 ‘뽀닷하게’ 책을 읽었다. 도대체 소설이란, 이야기란 인류가 그 오랜 세월 왜 그토록 좋아했을까? 소설을 읽을 때마다 무릎이 쳐진다. 누가 이런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소설가는 하이테크 시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수 많은 ‘잡스’ 들이다.

‘바람’으로 시작해서 바람으로 끝나는 이야기. 땅도 하늘도 모두 가족이라는 세계관을 지녔던 아메리카의 ‘원주인’들에게 바람은 먼 옛날 그 땅에 살았던 조상들의 이야기 소리였다. 바람을 맞으며 선인들의 슬기와 노고와 바램을 받아 그대로 후대에 실려 보내는 편지, 그 바람이 태평양을 건너 순천만 작은 학교 인안의 6학년 교실 을 거쳐 조례동 내아파트 베란다를 흐른다. 며칠 후 몽골 초원의 게르를 지날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주인공 아름이는 열일곱 살에 추파(秋波)-얼마나 멋진 말인가 ‘가을의 파고’-를 이기지 못한 어린 동갑내기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 세계에 100명도 되지 않는다는 희귀병 ‘노화증’에 걸려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겨우 서른 네 살일 때 아름이는 신체나이 여든 살을 맞는다. 그것도 매일 매일 급속도로 진행되는 늙음의 과정에서.

아름이는 물론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닥치는 대로 독서를 한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으며, 당연히 책을 싫어하는 부모님께 인생의 선배처럼 상담도 한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죽이 맞는 사람은 장씨 할아버지이다. 아흔 살 큰 장씨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장씨 할아버지는 아름이와 친구처럼 지낸다. 소주를 먹고 싶다던 아름이 병실로 찾아와 마지막일지 모르는 대화를 나눈다. 아름이는 시력을 잃어 냄새와 소리로만 존재를 파악한다.

바람이 찼다. 나는 어디에서 불러와 어디로 가는지 모를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조금씩 팩소주를 홀짝였다.

비극에서 낙천의 보석을 골라내는 탁월한 능력(성석재 평)을 가진 저자는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두근두근 내 인생은 비록 최악의 시간 여행을 해버린 아름이지만 인생은 결코 몸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아름이와 서하의 메일 교환이다. 아름이의 텔레비전 사연을 본 어떤 아이 서하의 메일로 시작된 온라인 대화는 ‘두근두근 내 인생’. ‘기적 같은 청춘, 가슴 벅찬 사랑’이다. 서하는 골수암을 가진 시한부 동갑내기 여학생으로 등장하는데 아름이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그에게 삶에 대한 도전과 애착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런데 결국 서른여덟 시나리오 작가지망 남자로 그 정체가 밝혀지지만 작가는 아름이를 찾아와 잘못을 비는 ‘서하’를 용서한다. 진정으로.

철부지 아빠는 아름이에게 말한다.

“미안해하지 마”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야”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뻐”

한때 아름이를 두고 일주일동안 가출한 것을 미안해하는 철부지 엄마에게도 말한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그게 뭔데?”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철부지였을 어린 엄마가 철부지 아빠에 대해 적는다.

장점 : 착하다

단점 : 지나치게 착하다

서른두 살 작가 김애란은 녹록치 않은 글발을 보여주었다. 그의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한 없이 성장할 유능한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를 유심히 지켜볼 재미도 생겨났다.

가을 바람이 추파가 되어 어디론가 내방을 빠져 나간다. 누군가의 볼을 스치면 누군가는 문득 시선을 멈출 것이다. 소설 한편이 두근거림을 선물했다.

2011. 10. 22.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