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49역사를 쓰다-이이화

짱구쌤 2012. 12. 30. 22:45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아, 이이화!

[ 이이화 자서전 역사를 쓰다 / 한겨레출판 ]

 

표지의 이 사진은 매우 친숙하다. 선생의 명성을 들은 지는 이십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때부터 선생은 이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나에겐 할아버지였는데 올해 연세가 75세. 주류 학계에서 배제된 재야의 역사학자로 알려진 그를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은 2003년 다른 학자들과 함께 추진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모금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둘째 동현이가 태어난 것을 기념으로 두 아들 이름으로 10만원  정도를 성금으로 보낸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0년 마침내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되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 것 같아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자서전을 읽고 느낀 점은 두 가지. 역사를 대하는 그의 투철함과 고단한 인생사를 헤쳐 온 의지에 대한 경의이다. 여느 자서전과 구별되는 점은 솔직함이다. 감추고 싶은 가족사나 살아오면서 한 수많은 실수, 실패, 거짓 등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역사학자로 최고의 덕목을 몸소 실천한 셈이니 자서전의 내용은 신뢰할 만하겠다.


글감옥이라 표현하는 작가들의 글쓰기는 독후감 한 편 써대기도 힘겨워하는 나로서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평생 한편도 쓰기 힘들다는 장편소설을 세편이나 써서 우리 모두에게 전설인 작가 조정래나,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쓰다가 단 한편의 장편소설을 남기도 떠난 ‘혼불’의 작가 최명희, ‘토지’의 박경리, ‘장길산’의 황석영 등은 모두 글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초인적인 의지로 글을 써온 작가들이다. 하나 이들이 쓴 것은 소설이니 이이화의 역사 글쓰기와는 조금 구별되어야 한다. 방대한 사료와 전작에 대한 검토가 없이는 불가능한 역사글쓰기는 소설의 그것보다 더한 글감옥이 아니었을까? 한국 역사학에 벼락같이 떨어진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는 22권의 한국통사 [한국사 이야기]는 10년 동안의 글감옥 끝에 나온 걸작이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위논문들은 다른 학위논문과 마찬가지로 미시적인 영역을 다룬다. 따라서 박사나 교수라 할지라도 그의 전공 분야에 한정할 때만이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고대사, 중세사, 근현대사 등이 그런 구분인데 한 역사학자가 그것도 주류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이 통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단 2년 서원대 석좌교수로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늘 학계의 변방에서 주류역사학의 ‘학문적 엄숙주의’-연구실에 틀어 앉아 고루한 논문만을 써대며 대중들과는 괴리되어 온-를 비판하며 대중과의 소통 속에서 역사를 이야기해온 그였기에 가능한 역사 쓰기 방식이다. 현재의 문화답사 원형으로 평가받는 [한길역사기행], 첫 민간 역사연구기관인 [역사문제연구소]의 발족과 [역사비평] 창간, 관제화 된 동학운동을 민중의 자발적인 봉기이자 변혁운동으로 파악하고 널리 알린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사업,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의 고대사를 복원한 [고구려 역사 지키기], 국가 폭력으로 자행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진상규명에 앞장 선 [과거사 위원회]활동은 그가 역사를 보는 관점을 명확히 엿볼 수 있다. “투철한 역사의식에 기반 하지 않은 역사가는 단지 기록자 일 뿐”이라는 그의 신념은 현실정치를 변화시키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의 인생사이다.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선생을 아버지로 태어났으나 평생 학문과 공동체 삶에 관심을 쏟은 부친 덕분에 일체의 서구식 공부는 받을 수 없었다. 대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고되게 읽힌 한문이 나중 이이화 선생이 역사 공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니 복이라면 복이겠다. 서자이며 고루한 한문학자 집안에서 견디지 못한 선생은 공부를 하기 위해 열다섯에 가출한다. 강화, 부산, 광주의 고아원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니고 서울 서라벌예배를 진학하나 학비 문제로 중퇴한다. 문학청년을 꿈꾸던 선생은 우연한 기회에 동아일보에 임시직으로 들어가 편집 일을 배우고 서울대 규장각에서 조선왕조실록 등을 편역한다. 이때 교수나 주류학자들의 형편없는 실력과 부도덕함을 목도하고 평생 주류학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직 역사학을 바로세우는 데 진력하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나는 이이화 선생을 사기를 쓴 [사마천]의 현생이라 부르고 싶다. 궁형의 좌절을 딛고 사기를 쓴 사마천처럼 온갖 고된 개인사를 딛고 불굴의 의지로 한국역사를 기록한 그이기에 결코 그에 못 미치지는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으로 글을 읽다가 나와도 우연치 않은 몇 가지 인연을 발견했다. 그가 어렵게 졸업한 광주고는 나의 모교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그 ‘잘난’ 광고의 동류의식(떼거리 의식)을 싫어하지만 그가 나의 선배라는 게 자랑스럽다. 양심선언으로 유명한 [이문옥 감사관], 민권운동가인 [박재승 변호사], 평화재향군인회를 창설한 [표명렬 장군], 영원한 전교조 스승 [오종렬 선생님]이 그의 광주고 7회 친구들이라니 나도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생겨 좋다. 또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연안(延安) 이(李)씨 같은 집안이란다. 평소 내켜하지 않은 같은 동문, 집안을 들먹이는 것일지언정 그 어떤 정승 先代를 만나 것보다 좋다. 얼굴 생김도 나에겐 친근하다. 닮았으니까.

2011. 9. 26.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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