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에이번리의 앤

짱구쌤 2016. 7. 25. 19:43

 

가치 있는 것은 문제가 따르기 마련

[에이번리의 앤 / 루시 모드 몽고메리 / 인디고]

 

낭독의 기쁨

매일 아침 특별한 일이 없으면 5분 정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짧은 5분이지만 이것도 쌓이니 연간 10여권 2,000쪽을 넘는다. 지금은 [클로디아의 비밀]을 읽는 중인데 6학년인데도 무척 기다리는 눈치다. 낭독의 힘이다. 읽어주기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은 500페이지에 달하는 [빨간머리 앤]이다. 두 달 가까이 읽어야 할 긴 책이지만 아이들은 어느 책보다도 집중하며 듣는다. 주옥같은 표현이 즐비하다. 이 책은 그 앤 시리즈의 속편이다. 앤이 성장하여 고향마을 에이번리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2년을 그린다.

 

가치 있는 것

마릴라와 함께 쌍둥이 고아 남매를 데려다 키우기가 만만치가 않다. 그 중 데이비는 장난꾸러기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주위의 걱정과 우려에 대해 앤이 대답한다. “가치 있는 일은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죠.” 데이비가 이런 믿음에 반응하며 멋지게 커가는 것은 또 다른 앤을 보는 기쁨이다. 그렇다! 가치 있는 일은 늘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것일진데 너무 쉽게 가지려고만 한다. 좋은 학교, 좋은 관계를 갖고자 한다면 응당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탓하지 않는다 / 박노해

농부는 날씨를 탓하지 않는다 / 농사는 기후가 짓는 것이기에

사진가는 구름을 탓하지 않는다 / 사진은 태양이 그리는 것이기에

시인은 시대를 탓하지 않는다 / 시는 고독이 써가는 것이기에

참사람은 힘으로 일하지 않는다 / 오직 사랑, 사랑이 하는 일이기에

교사는? 나는?

우선 아이들을 탓했고, 동료나 관리자도 한 몫을 했다. 열일곱 살의 초보 선생님 앤은 주위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체벌을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배경이 1908!) 물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앤은 끝까지 아이들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의 상당 부분은 남 탓이다. 내가 맡은 아이들의 특수성은 기본이고, 학부모들과 관리자들은 악역을 맡아주어야 한다. 일종의 알리바이나 보험인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그것들이 불편해진다. 25년을 가르치고도 남의 탓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모퉁이를 돌면

[빨간머리 앤]을 읽고 서평을 쓸 때가 벌써 2년 전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 혼란 속에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앤은 적잖은 위안과 힘이 되어주었다. 길은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 며 그곳에서 만난 어려움에 도전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던 앤을 보며, 생의 모퉁이도 채 돌지 못하고 진 아이들이 짠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 배는 물속에 있고 진실도 함께 떠오르지 않았다. 망각의 늪에 빠져 어렴풋하던 기억이(아니 양심이) [에이번리의 앤]으로 다시 선명해졌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길모퉁이에 이른 것이었다.(중략) 하지만 앤은 모퉁이를 돌아가려면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을 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만 보고 걷다보니 모퉁이의 앞도, 뒤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이제 곧 반백의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데 아직도 앞가림도 못하고 있으니. .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 앤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심을 가지고 대한다. 열일곱 새내기 선생님 앤에게서 배운다. 아니 세 띠 동갑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배운다. 그래서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2016725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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