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평화, 저녁이 있는 삶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조지 레이코프 / 와이즈베리]
교원평가는 교사를 서열화 시키고 학교를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 협력과 배려의 교육이 설 자리를 없게 만든다. 거기다 가르치는 행위를 점수화 시킨다는 다소 무모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준거까지 더해 대다수 교원들에게 부정적이다. 하지만 ‘교원 평가’라는 이름 속에 이미 “교사만 평가를 받지 않아?”라는 프레임을 고정시켜, 일반인들로 하여금 그것을 거부하는 행위를 ‘철밥통’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전락시킨다. 이것이 프레임이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허우적거리며 헤어 나올 수 없는 것. 그래서 교원평가에 대한 대응은 [교원평가 반대]라는 선명성만으로는 백전백패다.
신자유주의
저자가 고백했듯이 신자유주의라는 말 속에도 강력한 프레임이 존재한다. 자유는 일반적으로 좋은 것을 의미하므로 신자유주의 또한 그와 비슷한 부류쯤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해고의 자유’를 ‘노동시장 유연화’로 ‘기업 특혜’를 ‘규제 개혁’으로 포장한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자본과 권력을 위한 자유를 주장할 뿐이지만 그 강력한 이름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내용의 폭력성을 감추는 효과를 누린다. ‘신자유주의’는 ‘극자본주의’쯤으로 바뀌어야 했다.
세금 폭탄, 예산 폭탄
미 공화당은‘세금구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세금을 올리는 일은 나쁜 것이라는 프레임을 선점하였다. 그래서 세금을 올려 복지를 늘리려는 민주당과의 대립각을 확실하게 세워 기업 감세와 복지 축소를 현실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정권까지도 가져갔다. 저자는 보수 측은 이처럼 프레임 형성에 능하고 총체적으로 대응하는데 반해 진보는 그 정당성과 의미만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하여 번번이 실패한다고 지적한다. 하여 진보적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프레임을 형성하여 지속적이고 완강하게 밀고가라 충고한다. 예를 들면, 학교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학교 간 지원을 차별화 하는 것은 균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기업 역시 그들이 성장하고 활동하는 데 사회적 공공요소(간접 자본 이용, 대학의 연구 성과 공유, 소비자의 구매 등)에 절대적으로 기대었기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난 번 19대 총선에서 우리 지역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보수당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그가 사용한 구호는 ‘예산 폭탄’이었다. 모두들 황당하다고 했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해서 누구나 그 구호를 화제에 올려야 했다. 비판하건, 지지하건, 시큰둥하건 그 말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엄청난 프레임이다. 그의 전력이 청와대 홍보수석이었음은 우연이 아니다. 프레임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불공정한 게임이었다. 물론 그는 프레임에만 능한 정치가는 아니었다. 자신의 가치를 진정성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침의 평화, 저녁이 있는 삶
저자는 프레임을 슬로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중을 현혹시키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진정한 가치를 담아야 한다. 학교 혁신을 말할 때 내가 주로 사용하는 말이 있다. ‘아침의 평화, 저녁이 있는 삶’이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아침 시간에 교사가 아이들과 온전히 대면할 수 있어야하며, 교사건 아이들이건 학교에서 맘껏 배우고 가르치다 저녁이 되면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중심에 두는 학교문화가 정착되어야 하며,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정예화 해야 한다. ‘아침의 평화’는 짱구쌤의 창작품이고, ‘저녁이 있는 삶’은 정치인 손학규의 것을 차용하였다. 다소 추상적일지라도 내가 생각하는 교육적 가치와 일치하기에 당분간 사용할 생각이다. 물론 선거에 나갈 생각은 없다^^
2016년 6월 18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