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겊원숭이가 필요한 때
[유령에게 말 걸기 / 김진경 외 / 문학동네]
“이 정도면 되었다.”혁신학교가 경계해야할 말이다. 구성원 개인도 그렇지만 학교가 이런 분위기로 흐르면 이미 그곳은 성장을 멈춘다. 압축 성장시대를 살아온 우리 교육이 경쟁과 성과를 앞세우는 시대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게 위해 혁신학교를 만들었다면 혁신학교의 사명은 부단한 성찰과 비전의 제시일 것이다. 구성원들이 배움을 멈추고, 학교가 반복을 성찰 없이 용인한다면 혁신학교로서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내가, 우리 학교가 그렇지 않은지 자꾸 돌아봐야 한다.
새로운 교육생태계는
저자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교육생태계를 말한다. 기존의 ‘잘 살아보세 패러다임’(이중현)이나 ‘강남 패러다임’(김성근)은 모두 경쟁을 전제로 한 중앙집중식 교육체제이다. 정보가 넘쳐나고 분권화가 요구인 시대에 거기에 걸 맞는 교육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저자들은 그것을 새로운 교육생태계라 부른다. 학교와 사회가 분리되지 않은 유기체로 보는 관점은 대단히 유용해 보인다. 구성원과 환경을 총체적으로 아울러 그것의 조화와 균형을 말하기에도 적절하다. 생태계의 건강성을 말할 때 첫째는 종(種)다양성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상층이 아닌 저변에서, 울타리 안과 밖을 포괄하는 다양한 시도와 융합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교육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저자들은 그것의 좋은 출발점으로 혁신학교를 들었다.
유령에게 말 걸기
저자 김진경은 말 걸어주지 않고 두려운 존재를 ‘유령’이라 불렀다. 몸과 마음이 조화롭지 않은 불균형 상태도 ‘유령’이며 실체 없이 우리를 짓누르는 각종 고정관념과 관례도 넓은 의미의 유령이라 부를 수 있다. 교육의 주체라 부르는 학생은 그 첫 번째 대상이며 학부모와 지역사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아이들에게 말 걸어주는 교육, 학부모와 지역사회에 조응하는 교육, 그래서 실체로서 두려워하지 않는 교육을 이야기한다. 김진경은 참여정부에서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중현은 혁신학교(조현초), 이광호는 지역사회에서 고군분투하였다. 혁신학교가 우리교육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증인들이다.
“공부가 재미있어졌어요”
이 책에 소개된 ‘헝겊원숭이’실험은 흥미롭다. 헝겊원숭이일 망정 그것과 스킨십을 하며 자란 아기 원숭이가 그렇지 않은 원숭이보다 훨씬 친사회적이며 건강하게 자랐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 교육이 이런 헝겊원숭이의 역할을 송두리째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올해 맡은 6학년들과 한 달을 지내고 펴낸 학급신문에서 가장 인상 깊은 글은 “선생님, 공부가 재미있어졌어요.”였다. 다분히 인사(?)성 글이라 치더라도 가르치는 교사로서는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다. 학기 초 가정방문을 하고서야 아이들에게 느껴지는 약간의 무기력과 번잡스러움의 원인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온전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아이가 절반에 이름에도 그들이 지금처럼 건강하게 올곧게 커가는 것에 감사했다. 학교와 교사가 그들에게 헝겊원숭이 같은 따스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올 초에 전북교육청이 주관한 시도 연합 전문직 연수에서 이 책이 주요 교재로 채택되었다고 들었다. 연수에 참여한 교사는 전북교육감의 혁신 마인드에 놀랐고, 그곳 전문직들이 교육감과 가지는 일체감이 부러웠다고 했다. 3월에 학교는 여전히 분주했다. 아이들과 온전히 대면하면서 좋은 관계를 쌓아야할 시기에 교사들은 각종 장부와 회의에 시달리며 새로 만난 아이들을 짐스러워 했다. 관리자들은 담임에게 교실에서 머물 여유를 허락하지 않은 체 업무를 종용하고, 교육청은 부지런히 교사들을 회의에 불러 어깨에 가득 짐을 지워주고 있다. 오래된 새 학기의 관행은 “3월초에 아이들을 잡아야 일 년이 편안하다”는 비교육적 교훈을 교사들에게 심어주었다. 유령들이다.
4월, 이제라도 아이들과 따뜻한 시선을 나누자
화창한 봄날이다. 가혹한 겨울을 이겨낸 푸른 생명들이 지천인 지금, 이제라도 생기 넘치는 아이들과 눈 맞추며 봄을 만끽해야 한다. 다시 오지 않을 2016년의 봄은 찰라처럼 사라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