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헤세로 가는 길 / 정여울 / arte]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내 손에는 헤르만 헤세의 책들이 쥐어져 있었다.”
작가는 ‘헤세는 내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다. 작가가 연륜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이 헤세와의 만남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느꼈다. ‘전적으로 우연이었지만, 아름다운 필연’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그런 필연을 만나는 것은 진정 복된 일이다. 작가가 헤세를 가장 친근한 작가이자 멘토로 삼는 이유는, 그가 모범생이어서가 아니라 방황의 전문가 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이유이다. 사실 헤세의 일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신학교를 1년도 채 다니지 못했고, 조국 독일에서 미움을 받아 타국에서 살아야 했으며, 세 번의 결혼과 정신과 치료, 그리고 자살 시도 등 ‘방황의 끝판’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런 허약함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여유를 느낀다고 했다. 삶이 힘겨울 때, 우리는 영웅보다는 동료에게서 힘을 얻는다.
가장 위대한 성취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신을 향한 운명의 부름을 이행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성취임을 아는 것”(176쪽) 노벨상을 수상한 헤세지만 그가 40년을 살았던 곳은 1년 내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스위스 마을 몬타뇰라였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정원을 가꾸고, 독자들과 많은 편지를 나누며 살았다. ‘세상의 시계’가 아니라 ‘자신만의 시계’로 살아간 것이다.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네 안의 특별함을 두려워하지 마. 누군가 너를 비난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더라도, 네 안의 가장 밝은 빛을 잃어버리지 마.”(213쪽)라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라고. 그가 가장 어려울 때 만난 심리학가 융은 그리기를 권한다. 그리기를 통해 자신을 속박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랬다. 헤세는 그리기와 함께 정원을 가꾸는 것에서 가장 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괴로움이고 모든 것이 고뇌이고 그림자일지라도, 그래도 이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시간만은 안 된다.[정원 일의 즐거움]”
우클렐레 그리고 신영복님
둘째 아들과 두 달 전부터 우클렐레를 배운다. 악기와는 젬병인 관계로 둘째의 타박을 받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이 훨씬 커서 당분간 배울 계획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를 조금 멋지게 부르고 싶다. 헤세의 그리기와 다름 아니다. 50이 넘으면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고 주위에 이야기한다. 시간과 이름이 필요한 곳에 다녀오고, 약간의 돈으로 도움도 주면서 살 것이다. 그리고 음악 들으며 책 읽고 글쓰기, 아무거나 그리기,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 쓰고 작은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다. 세상에 귀를 열면서도 내 안의 울림에 충실하고 싶다. 정여울 작가에게 헤르만 헤세가 아름다운 필연이었듯이 내게는 신영복님이 그런 분이다. 20년보다 훨씬 전에 책을 통해 만난 이후 지금껏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 분이다.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헤세는 독자와의 편지에서 헤세에게 답을 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깊이 물어보라고 하였다.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물음. 깊어가는 가을,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도 쓰고, 드넓은 자연의 정원도 보면서 인생 후반부를 기획해 볼일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2015년 10월 3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