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자전거 여행 / 김훈 / 생각의 나무]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모든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작가의 말이 아니어도 내 힘으로 바퀴로 밀고 나가는 모든 것들은 기쁨이다. 한 달 전 아이들과 함께 인라인 80리길을 달릴 때 확실하게 느꼈다. 바람결을 느끼며 동천을 따라 달리는 내내 행복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도 그러하리라. 오롯이 다리의 힘에 의존하여 나아가는 이 단순성은 점점 복잡해지는 삶에 청량제쯤 되어 보인다.
10년 전에 이 책을 사서 읽을 때에는 그냥 좀 난해한 답사기였다. 그래서 좀 읽다가 책꽂이에 꽂아두었는데 최근에 다시 출간되었다는 말에 다시 보게 되었다. 전혀 다른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당시에 난해했던 말이 술술 이해되고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놀랐다. 그 사이 저자의 책을 상당히 읽었고 나도 모르게 ‘김훈식’ 글쓰기를 좆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짧고 간결한 문장, 쭉쭉 치고 나가는 글 구조 등은 비록 먼 고지이지만 도달하고 싶은 곳이다. 표지의 글처럼 밑줄 긋고 싶은 곳이 참 많은 책이기도 하다.
비행기 타는 불편함 때문에 해외여행은 일체 하지 않는다는 저자는 자전거로 우리 땅 곳곳을 훑고 다닌다. 특히 산길, 고갯길을 많이 다니는데 평지에서의 자전거 타기도 버거워하는 나에 비하면 고수도 한참 고수다. 그의 희열은 가파른 고갯길을 일단 기어를 놓고 꾸역꾸역 다다랐을 때 최고조로 오른다. 근육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 마라톤 선수들이 사점(死點)이라고 부르는 순간에 느끼는 그것처럼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 선암사 뒷간, 구례와 하동의 섬진강길, 안동 화회마을, 부석사 무량수전 등은 저자가 사랑하는 곳이다. 다행스럽게 나도 가본 곳들이 대부분이어서 여느 답사기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의 대표작인 ‘칼의 노래’에서처럼 이순신의 글쓰기는 김훈이 닿고 싶은 글쓰기의 교본이다. 군더더기 없는 글, 사실에 근거한 철저한 기록은 그의 표현대로 하면 삼엄한 글쓰기 방식이다. 한없이 단순한 이순신의 칼처럼 글도 그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러한 글쓰기가 가능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많이 써보고 고치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세히 들여다보고 깊이 생각하는 힘이다. 책 속의 글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는데 김용택 시인의 학교 마암분교 아이들에 대해서 쓰는 글은 너무 쉽게 읽힌다. 신기하다.
요즘 자전거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좋은 사람들이 동호회에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너무 좋은 ㅜ사람들이어서 들어가면 되는데 얽매여서 타는 자전거는 왠지 탐탁치 않다. 이어폰을 꽂고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나아가는 게으른 자전거 타기가 좋다. 목표를 정해 놓고 죽을똥 살똥 타는 자전거 타기는 내방식이 아니다. 진짜 고민은 ‘조금 좋은 자전거를 살까?’ 하는 것이다. 김훈처럼 좋은 자전거는 아니지만 오래 탈 튼튼한 자전거를 사게 되면 되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자전거 타기가 숙제처럼 의무감에서 타게 될까봐 머뭇거린다. 게으른 자전거 타기가 좋은데 말이다. 그래도 일단 저질러 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다. 김훈의 이 책이 그것을 부추긴다. 앞의 글처럼 ‘자전거로 저어가는 세상’이 기대된다.
2014년 11월 16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