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비밀의 화원은 있다
[비밀의 화원 /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 시공주니어]
바뀐 독서 취향?
“이 책 자기가 읽고 있어?”
“응”
“갑자기 독서 취향이 바뀌었네.”
[빨간머리 앤]에 이어 이 책을 보고 있자니 아내가 불쑥 던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조금 바뀐 듯하다. 이 책에 앞서 읽다만 [온도계의 철학]은 정말 인내심을 시험하는 책이었다. 대중적인 과학책이라는 카피를 믿고 샀는데 낭패감에 열패감까지.. 책을 읽는 패턴이 진지와 여유를 번갈아 해줘야 한다고 믿기에 고른 책이다. 반 아이들에게 좋은 인문고전을 읽히고 싶기도 하고 아이들 책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한 몫을 했다. 비밀의 화원도 초등학교 시절, 계림문고판으로 읽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완역본을 읽고 싶어 찾은 책이다. [빨간머리 앤]에서도 느꼈지만 번역이 잘된 충실한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는 것이 중요하다. 거두절미한 조악한 표현은 문학작품을 줄거리만 알게 하면 된다는 수능식 교육의 결과이다. 문장이 주는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해야 한다. 영국의 요크셔 지방 사투리를 충청도 사투리로 번역한 옮긴이의 용기가 부럽다. 몰입을 심하게 방해하긴 하나 다른 대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읽을 만하다.
가장 완벽한 어린이 캐릭터 디콘
알려지다시피 줄거리는 간단하다. 까칠한 소녀 메리가 영국 요크셔 지방 황무지로 이사 와서 그곳 땅을 닮은 사람들과 숨겨진 비밀의 화원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또 다른 까칠 소년 콜린이 메리와 같이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내용이다. 어린이 문학작품의 캐릭터들은 참 멋지다. 성인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들 다소 복잡미묘한데 비해 어린이 인물들은 명쾌하다. 대신 너무 단순해서 현실적이지 않기도 하다. 좋아하는 주인공은 말괄량이 삐삐, 톰, 허크, 빨간머리 앤, 마녀배달부 키키 등이 있다. 하나같이 괴짜이면서 인간적이다. 가장 좋아하는 주인공은 미래소년 코난이다. 무식할 만큼의 저돌성, 친자연적인 순수함이 좋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디콘은 특별하다. 지금껏 접해본 어린이 문학 작품 사상 가장 완벽한 캐릭터 같다. 황무지에서 나고 자란 이 아이는 독립적이다.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집중하며 누구보다 해박한 자연 지식을 갖추고 있다. 믿음직하다. 약속을 잘 지키며 예의가 바르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자상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긍정한다. 무엇보다 자연을 좋아하며 자연의 법칙에 순응한다. 자연이 주는 생명의 에너지를 잘 알고 이를 이용할 줄 안다. 여기에 인정도 많다. 어느 누가 싫어할 수가 있으랴! 아이들에게 소개할 좋은 모델을 찾았다. 디콘의 어머니 소어비 수잔 여사 역시 대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식 열둘을 키우는 이 억척 여성은 그런 어머니들이 갖고 있는 거친 성품이나 악착같은 이기심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느긋하며 합리적이다.(실제로 가능한지와는 별개로) 주변에 관심이 많고 인정이 넘친다. 그래서 콜린의 아버지를 설득시키기도 한다. 정원사 벤 할아버지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하지만 속이 깊고 정이 많다. 빨간머리 앤의 표현대로 하자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에요.”
불편한 진실
영국 태생의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인도에서 산 적이 있었다. 식민지 인도에서의 기억이 작품 속에서 종종 드러난다. 사계절이 없는 곳(?), 복종만 하는 사람들, 콜레라가 창궐하는 곳 등 한마디로 미개하며 살기 힘든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비밀의 화원을 극대화하려는 문학적 장치라 하더라도 심한 편견이다. ‘인도를 다 준다 해도 셰익스피어와 바꾸지는 않겠다!’이 황당하고 무례한 말이 제국주의 영국인들이 당시에 갖고 있던 식민지 인도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문화와 역사는 지극히 특수한 것이어서 보편성이라는 거친 폭력으로 가늠할 수는 없다. 오리엔탈리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작가의 인식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정원을 가꾸는 삶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질 좋은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꼭 추천이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원을 가꾸고 싶어 한다. 자연에서 나온 인간의 본능이며 자연과 점점 멀어져가는 현대인들의 욕구이기도 하다. 집에는 손바닥만한 베란다 정원이 있다. 이사 올 때 방치되어 있던 그곳을 철거하고 깔끔한 마루로 만들려는 무식한 시도를 아내가 제지하면서 “집에 숨 쉴 공간이 어디에라도 있어야죠.”라고 한 말은 참으로 현명하였다. 그곳이 없었더라면 이곳 순천의 도시 생활은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몇 그루의 나무와 화초를 심어서 매일 매일 들여다보고 가꾸는 일은 소일거리 이상의 기쁨이었다. 메리와 아이들이 매일 들러 가꾸었을 아름다운 비밀의 화원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더 없는 Secret Garden이다. 이 정원을 가꾸면서 생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느낀다. 교실에서 매년 죽여 나갔던 화분들을 한 개도 빠짐없이 푸르게 가꾸게 된 것도 이 정원 덕분이었다. 예전에는 내가 필요할 때 주던 물을 이제는 식물의 입장에서 살피게 된다. 흙이 말랐는지 보고 물과 햇빛을 조절한다. [시크릿 가든]의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Serenade to spring]이 참 좋다. 봄의 세레나데를 듣는 것, 정원에서 피어나는 푸른 잎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죄스러운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번 봄에서, 그래도 내 마음을 골라주고 다독여주는 ‘비밀의 화원’이 있어 견딜만하다.
2014년 5월 5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