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짱구쌤 2016. 8. 17. 12:03

 

 

쓸모없는 독서는 없다!

[책 읽기의 쓸모 / 김영란 / 창비]

 

맞다, [김영란법]의 그 사람

한우농가 다 죽이는 김영란법 개정하라!”-한우협회

어제 아내와 함께 들른 구례 거리에 붙은 현수막이다. 3만원으로 제한된 식사와 선물 접대 때문에 한우농가와 요식업체가 큰 타격을 받을 거라는 이야기인데, 뇌물과 접대로 유지될 내수라면 초장에 글러먹은 거다. 애꿎은 김영란법이 내수 부진의 독박을 쓴다. 참 염치도 없다.

문제의 그 김영란법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법관이자 소수자의 대법관으로 불린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하도 많이 나오는 이름이어서 궁금했는데 우연히 접한 책의 저자라니.

 

대법관의 독서법, 쓸모없는 책읽기

대법관의 독서법은 다소 싱거웠다. 직업과 관련한 책읽기는 별로 없고 대부분은 그와 무관한 쓸모없는 책읽기라는 것이다.

쓸모없는 책 읽기는 제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유일한 투자였습니다.”

저자는 애써 쓸모없는 책읽기라고 했지만 그가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사회적 정의에 공감할 수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쓸모없는 책읽기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쉽게 이야기를 시작해서, “이 정도 글은 나도 쓰겠네라고 아내에게 말했었는데 점점 수준이 높아지고 깊어지면서 이내 그 말을 후회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섭렵하면서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가령 미셀 뚜르니에의 [흡혈귀의 비상]이라는 책을 통해 이분법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 나아가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 톨스또이의 [전쟁과 평화]까지 닿는다. 집요한 독서법이다.

이분법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나도 확장된 이분법을 가지고 있다. 교사를 멘토와 꼰대로 나누는데, 청소시간에 말로만 지시하면 꼰대, 자신도 몸을 부리면 멘토일 가능성이 높다. 믿거나 말거나 경험상 아주 유용한 이분법이다.

 

기이한 화성인의 중립성과 블루드레스

대법관 김영란도 그랬고 법학자 조국도 최고의 법관 책으로 추천한 것이 알비 삭스의 [블루드레스]이다. 반가워서 들춰보니 20132월에 읽고 메모해둔 것이 있어 다시 보았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아라파트 헤이트)에 대항하며 평생을 살아온 헌법재판관 알비삭스는 그 차별정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블루드레스 정신을 이어받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우분투Ubuntu(회복적 정의, 공생)를 실천하며 살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되면 결국 기이한 화성인 같은 중립성을 낳는다. 우리가 익히 장발장에서 본 이 기이한 중립성은 법률가들의 공감능력 부족에 기인한다. 그래서 저자가 좋아하는 시카고 로스쿨 교수 누스바움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하게 상상하여 사려 깊게 측정하고, 나아가 그것에 관여하고 또 그것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것을 바꾸어 나가는 힘을 얻는 강력한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이와 같은 상상력이 없다면 재판관의 평가는 핵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83)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른바 김영란법을 만든 저자는 정작 이 법의 원래 의미가 퇴색하는 것에 아쉬워한다. 창백한 법률가의 눈이 아닌 따뜻한 인간의 얼굴로 세상을 바라본 대법관은 요즘 말년의 양식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고민이라고 했다. 오직 읽고 생각하는 것 외에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했지만 쓸모없는 책읽기가 그를 쓸모 있게 했듯이 그것 또한 그러하리라 믿는다. 그녀의 건투를 빈다.

2016817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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