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에디톨로지

짱구쌤 2015. 1. 29. 23:43

 

O·O···········

[에디톨로지 / 김정운 / 21세기북스]

나는 속이 아주 깊다. 그런데 내 속이 깊은 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워낙 좁아서 그렇다. 속이 한없이 깊지만, 동시에 아주 좁은 나는 대인관계에 항상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인생이 자주 꼬인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아주 잘 버틴 것은 결정을 잘해서다. 쫀쫀하고 비겁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과감한 결정을 내리곤 한다. -본문 316

 

저자 김정운은 이렇게 아주 솔직하다.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대학연구소인 [여러 가지 문제연구소] 소장을 하다가 지금은 일본으로 건너가 日本畵를 공부하고 있다. 지난 저작 [남자의 물건]을 읽고 그가 가장 잘하는 구라에 넘어가서 나도 파마를 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의 말처럼 새로운 나를 보게 된 것은 확실했다. 그가 심리학의 본고장 독일에서 13년을 공부한 정통 학자임을 증명하려는 듯 종횡무진 문화와 심리학을 넘나든다. 그는 문화심리학자다.

 

재미는 창조다. 창조는 편집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그의 강연을 TV로 우연히 보았다. 도올 이후로 가장 재미있는 강연이었다. 주제가 분명했고, 관점이 자유로웠으며 무엇보다 전달 방식이 재미있었다. 그의 표현대로 하면 편집 가능성이 있는강연이었다. 그가 평생 누구 앞에서 주눅 들어본 적이 없다는데, 예외는 도올과 이어령이다. 도올의 크로스텍스트와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를 설명한다. 둘 다 요즘 이야기하는 통섭, 융합, 편집의 대가들인데 이어령을 더욱 높게 평가한다. 도올은 동양고전이라는 텍스트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반면 이어령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단다. ‘일리있지만 내가 보기엔 김용옥의 널뛰기가(?) 더욱 자유스럽다. 관점의 차이니까. , 관점 역시 편집의 결과라고 했으니 승패는 없다. 내가 가장 공감하는 것은 재미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재미있는 일을 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세상의 잣대와 이목은 부차적이다. 거기에서 창조가 시작된다. 적어도 그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사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프로이트와 카라얀

이드, 자아, 초자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콤플렉스, 나르시시즘, 트라우마 등 정신분석의 여러 이론과 용어는 모두 프로이드에 의해 정립되었다. 무의식을 규명하며 인간의 심리를 명쾌하게 정의한 프로이드이지만 현대에 들어 수많은 이론적 도전에 직면하여 바야흐로 가히 프로이드 학파를 형성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시대적 비판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심리의 문화사회적 편집 가능성에 대하여는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지평을 넓혔다는 이야기다. 멋만 부리는 연예인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지휘자 카라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소리를 영상과 결합(편집)한 그의 선구적 시도가 아니었으면 클래식의 쇠퇴는 훨씬 빨리 찾아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처럼 클래식에 대해 무의식적 공포감을 갖는 사람에게는 카라얀의 그 멋진 폼이 무척이나 반갑다. 그가 빈필을 지휘하면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이끌림이었다. 그는 이렇게 편집 가능한 천재들을 높게 평가한다.

 

일본과 러브호텔, 그리고 청결

그는 시각이 독창적이다. 이 책에는 수십번 반복되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가 그것이다. 그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익힌 학습법으로 노트를 멀리하는 카드 기록법이 있는데, 핵심 키워드를 정리한 카드는 편집이 불가능한 노트에 비해 자유로운 크로스와 하이퍼가 가능하다고 한다. 가령 일본에 러브호텔이 성업하는 이유와 일본 가옥의 특징이 느닷없이 만난다는 것이다. 습기와 자연재해를 막는 목조주택은 상대적으로 방음성이 약하기에 사랑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러브호텔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다미방의 특성과 일본인의 청결의식도 크로스 된다. 다다미 방석은 아이들의 배설물에 취약하므로 어렸을 적 항문기 불안에 시달린 일본인들이 청결에는 거의 광적으로 철저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모두 그의 잡생각(?)에서 나왔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편집의 중요성은 나도 많이 동의한다. 나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편집에 집착한다. 글과 그림을 편집하여 좋은 신문과 문집을 만드는 일, 그것으로 가르침과 배움의 역사를 기록해 놓는 일, 그것이 내 사고와 행동의 원천이 된다. 23년간 학급문집 [어깨동무]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자면 오기로 만들기도 한다. 이제 와서 그만두기 뭐해서.. 그가 말하는 편집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하여간 나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파마 거사를 본뜬 것처럼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그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볼 생각이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기반을 털고, 계급장 떼고 새 일을 시작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그는 책 첫 장을 그렇게 우아하게 시작했는지 모른다. 책을 읽는 분들은 혼자서 조심히 첫 장을 넘기기 바란다. 나처럼 봉변당하지 말고.

2015129일 이장규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덟 단어  (0) 2015.04.02
호빗  (0) 2015.02.27
리스본행 야간열차  (0) 2015.01.25
원더풀 사이언스  (0) 2015.01.17
순간의 꽃  (0) 201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