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다른길-박노해

짱구쌤 2014. 4. 6. 07:26

 

 

지금 여기서 자신을 온전히 살아내기를

[다른길 / 박노해 / 느린걸음]

 

    사족에 불과할 내 이야기는 접어두자. 다만 박시인의 발의 기록을 옮겨 적기만 해도 행복하다.

 

오늘 하루의 생을 남김없이 불사르고

지금 여기서 자신을 남김없이 온전히 살아내기를

 

다만 그곳에 가기 위해 가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미 목적지임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을 잃어 버린다면

인간은 어디서나 대체가능한 획일적 존재로 쓸려가고 만다.

 

고귀한 것은 늘 무거운 것,

고귀한 짐을 아름답게 이고 지고 가는 자가 고귀한 사람인 것을.

 

가난해도 바르고 비굴하지 않은 사람

남을 속이고 약속을 어기는 걸 죽음으로 아는 사람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쾌활한 사람

아름다운 기품을 잃는 걸 인생의 실패로 아는 사람

-라자스탄의 열두살 소녀

 

만족滿足이란, 발이 흙 속에 가득히 안기는 것

대지에 뿌리박은 삶에서 행복이 차오르는 것이니

 

라자스탄 여인들은 걸어 다니는 신전의 기둥이 되어

인간의 위엄을 세워 보이고 있다

 

디레 디레 잘 레 만느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함께하는 혼자로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

 

우리 마을엔 전깃불은 없지만 철마다 꽃등불이 가득 피어나요

너무 멀어 다 데려올 수 없어서 한 송이만 제 귀에 걸고 왔어요

 

오늘 무슨 일을 했는가 못지않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가 중요하지요

모든 것은 물결처럼 사라지겠지만

사랑은 남아 가슴으로 이어져 흐르겠지요

 

누가 공부 잘하냐고 물어보자 서로 어리둥절하다가

다 잘하는데요, 이 친구는 셈을 잘하구요

저 오빤 나무 타고 과일을 잘 따구요

앤 물고기를 잘 잡구요, 전 노래를 잘 불러요

아참, 저 이쁜 언니는 최고의 날라리래요

 

희망 또한 마찬가지다

헛된 희망에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는 것

진정한 자신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것

그대, 씨앗만은 팔지 마라

 

사랑은 자신을 불사르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빛이 있다

순수한 헌신만큼 맑은 빛이 있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결핍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다 사르지 못하고

자기 존재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

잉여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고통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이 아무 의미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에 가득한 탐욕의 공기가 내 안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시대

나는 날마다 원칙과 고독의 가시우리를 단호히 두르리라

하지만 세계의 햇살과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리라

그렇게 참사람의 숲을 이루어 한줄기 빛의 통로를 열어가리라

 

눈물 젖은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나는 신을 본다

거대한 성전이 아닌 눈동자에서 신을 만만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대지에 피어오르는 안개는 지구의 푸른 입김

농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인류의 왕관이니

 

아 여란 바까오 나무가 지진 해일을 막아줄 순 없겠지요

하지만 자꾸 절망하려는 제 마음은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손으로 커피 체리를 딸 때마다 저 안개 너머에

지금 커피잔을 들고 미소 짓는 누군가를 떠올리곤 해요

 

우리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다 공짜다

나무 열매도 산나물도 아침의 신선한 공기도

눈부신 태양도 샘물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도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은 다 공짜다

 

아이가 자라서 라당의 농부가 되면 좋겠어요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건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거죠

풍년에는 베풀 수 있어 좋고

흉년에는 기댈 수 있어 좋고

우리는 그저 사랑을 하고 웃음을 짓는 거죠

 

내가 정의하는 실패는 단 하나다

인생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살지 못하는 것!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음의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있음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해 분투하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감사와 우애로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

201445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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