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家의 욕심, 작가노트와 소설의 차이
[ 정글만리1,2,3 / 조정래 / 해냄 ]
벌교의 [태백산맥문학관]은 언데 가보아도 참 좋다. 벽면 설치작품과 잘 어울리는 건물도 그렇지만 작가의 깨알 같은 취재노트, 산더미같이 쌓아 올린 원고더미, 손때 묻은 필기구 등은 大家의 글감옥(?)을 느끼기에 손색이 없다. 며칠 전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에 다녀온 후 더욱 그렇게 생각되었다. 작가가 답답한 한옥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남원에 있다는 [혼불문학관]은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조금 더 넉넉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정래는 이 시대 최고의 작가임에 틀림없다. 평생 한 편도 힘들다는 대하소설을 무려 세 편이나 완성하여 1,300만부나 판매한 일은 평단 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사랑받는 작가임을 증명한다. 그 양도 양이지만 그간 금기시되어온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태백산맥]은 그 자체로 한국문학사에 획기적인 사건이다. 물론 그로 인해 작가가 받았을 유형무형의 시달림과 피해는 동시대를 사는 독자로서 죄송하고 부끄럽다. 우리 사회가 이룬 민주주의와 근대화의 성취가 맞닿은 연작들인 [아리랑], [한강]도 물론 대단하지만 태백산맥의 그것에 비할 수는 없다.
작가가 세편의 대하소설에 이어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어 네이버에 연재한 소설이 [정글만리]다. 14억 중국이 아시아의 종이호랑이에서 G2가 되기까지를 개괄하고 그곳에서 글로벌 경제전쟁을 치루는 한국, 일본, 프랑스 등 다국적 세일즈맨들의 분투가 이야기의 골자를 이룬다. 여기에 중국 인민들의 생활상, 개혁개방의 성과와 병폐, 한중일의 역사문제와 영토분쟁, 한중 양국의 대학생 연애담 등이 양념처럼 곁들여진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주제가 없을테지만 작가는 대하소설 세편을 완성한 대가답게 인물과 사건을 능숙하게 배치하며 이야기를 이끈다. 앞의 태백산맥 문학관에 전시관 초입에 있는 작가노트에는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메모되어 있다. 간략한 프로필과 가계도, 그들 사이 관계가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소설 창작의 기법을 보는 것 같아 신기했다. 왜 소설의 삼요소에서 인물이 가장 앞인가를 이해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실명이 공개된 곳이 포스코이다. 작가가 포스코 창립자인 박태준과 맺은 관계는 한동안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우익들로부터 빨갱이라 매도되는 작가가 보수우익의 대표적인 경제인이자 정치인인 박태준과 남다르게 친한 것이 세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작가는 한 글에서 보수적 자본가이지만 민족 자본가로서 박태준은 그 어느 누구보다 존경 받아야할 사람이라고 하였다. 기간 사업인 제철 사업을 일으켜 굴지의 기업을 만든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며 그 일은 사회를 개혁하고 진보시키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 평가하였다. 그를 이념의 왼쪽 중간 쯤에 위치시키려는 시도가 맞지 않은 일임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개인 소견으로는 ‘양심적이고 개혁적인 민족주의’ 정도가 가까운 지평이라 생각해 보았다. 작가는 부인할 테지만..
소설은 재미있다. 이틀 만에 세 권의 장편소설을 다 읽었으니 당연한 말이다. 작가의 특기인 술술 풀어내는 능력에 중국이라는 최고의 소재가 만났으니 물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심각한 갈등과 아슬 아슬함 없이 이야기는 비교적 해피엔딩으로 나아가기에 부담 없이 넘어가는 책장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이 전의 [허수아비춤]에서도 느낀 거지만 점점 소설책보다는 정치경제학이나 역사책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조금 불편했다. 실력 있고 입담 좋은 대학 교수님께 강의 듣는 기분이랄까, 작중 인물인 전부장의 입을 빌려 쉴새없이 쏟아지는 중국에 대한 정보는 작가가 필시 작가노트(취재노트)에 메모한 내용임에 틀림없다. 작가노트의 메모가 소설 속 인물과 사건에 녹아 들어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구조를 짜는 소설적 얼게는 대가가 이전에 보여준 대하소설의 내공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창작 의도에서도 밝혔듯이 G2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이해와 대책이 앞서는 바람에 ‘강의’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가 소설 속에서도 누누이 강조한 중국인들의 ‘만만디’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했듯이 천천히 풀어야 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조정래는 大家이기 때문이다. 멘토와 꼰대의 차이가 백짓장 한 장이듯이 작가와 강사의 차이도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거친 소견이지만 태백산맥의 세례를 받고 그 문학관에서 늘상 힘을 받는 독자의 충언임은 확신해도 좋다.
2013년 8월 6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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