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태도’
[ 살아야 하는 이유 / 강상중 / 사계절 ]
한 중년의 사내가 서 있다. 저자 강상중이다. [고민하는 힘]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재일조선인으로 도쿄대학 교수이다. 이지적 외모의 그는 다소 외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깊은 사색과 풍부한 문학적 감성으로 일본에서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의 슬픈 표정은 2011년에 겪은 아들의 죽음,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원전사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자살, 무기력과 열패감에 허우적거리는 일본사회에 울림을 전한다. 삶에 대한 ‘태도’를 갖자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위안서로 분류할 수 없는 깊이는 그가 전작에서 보여준 ‘고민’과 맞닿아 있다.
“우리의 인생은 바로 그 인생에서 나오는 물음에 하나하나 응답해 가는 것”(p.190)
저자는 20세기 초 일본의 지식인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 작품을 통해 현재 직면한 ‘일상화된 비상사태’에서 다양한 인간군들의 고통과 분열을 놀랍게 재현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과학 기술의 맹신에 대한 경고(일본 원전사태에서 과학 신화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카지노 자본주의(돈 놓고 돈 먹기)의 천민성 등을 차분히 조명한다. 아울러 연간 3만명(일본)이 넘는 자살자를 만드는 사회적 병폐를 지적하며 밝힌 아래의 주장은 꽤 신선하다.
“진짜 찾기는 신경을 몹시 피곤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는 절대로 손이 닿지 않는 목표를 저편에 세워 놓고 영원히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헤겔이 말하는 '불행한 의식'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의 일부는 그런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끙끙거림'을 해소하는 치료법을 다룬 책이나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적인 사고로 바꿔주는 자기계발서 같은 것들을 줄줄이 내보냅니다. 새로운 수법의 '행복론'이지요. 사람들의 머리를 실컷 두드려 쳐놓고 그 다음에 진통제나 습포제를 파는 그런 '악덕 상술' 같은 문화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 자살에 실패한 사람들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대의 병리로 취급하지 않고, 자기실현에 실패한 평범한 무리로 보지 않고,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라며 잘라 버리지도 않고, 그들을 닥치는 대로 자기다움의 탐구로 내모는 현실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92)
과도한 ‘자기(자아) 찾기’나 ‘자기 계발’은 세상에서 유일성과 일회성을 갖는 ‘내 삶’을 경시한다는 것이다. ‘긍정의 힘’과 ‘행복론’이 우리에게 주는 허무함을 잘 지적했다.
‘나는 과거로소이다’도 마음에 와 닿는다. 켜켜이 쌓아 온 나의 과거를 부정하거나 잊지 말고 그것을 인정할 때 현재와 미래가 공허하지 않다. 자주 언급되는 일본 소설 작품들과 생소한 철학자들 때문에 글에 몰입하기 힘들었지만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문제로 올려놓은 저자의 깊이 있는 고민에는 십분 공감하였다.
대학 동기들과 일 년 만에 만났다. 모처럼 편안하게 이완된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대견했다. 곤두세워 사람을 만나고 의식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도 생겨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으리라. “뭐가 되어도 인간다운, 정직한 생활을 할 생각입니다.”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다짐을 서로 하는 듯 보였다. 저자도 에는 듯한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시기를 머나먼 이곳에서 빌어 본다.
2013년 1월 20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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