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93화성녀를 사랑한 어린왕자 이야기-안준철

짱구쌤 2012. 12. 31. 10:26

 

 

너를 위해 먼저 태어난 사람, 선생

[ 화성녀를 사랑한 어린왕자 이야기 / 안준철 / 전교조 ]

 

 

지난 일요일, 5년 만에 만난 제자들은 이미 숙녀가 되어있었다. 3을 앞두고 불안감 가득한 이 녀석들은 분명 위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맛있는 것을 사주고 아름다운 순천만 풍경을 보여주었고 따뜻한 곳에서 차를 대접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의 위로를 받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켜켜이 쌓인 세월이 고마웠다.

 

안준철 선생님은 순천의 한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그의 책 [그 후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로 처음 알게 되었고 강연을 한차례 들었으며 가끔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 인연의 전부이지만 뵐 때마다 어찌나 편안해 보이는지 얼른 내 얼굴을 문지르며 가다듬곤 한다. 그 책 내용 중 어떤 힘든 제자가 학교로 돌아올 때까지 운동장을 몇 십 바퀴 뛰는 선생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는다.

 

안준철 선생님은 담임하고 있는 모든 아이들의 생일시를 써서 건네준다. 첫 발령 때부터 지금까지 800여 편 넘게 썼다고 하니 가히 고은시인의 [만인보]에 필적할 [만학생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시는 지금 담임하는 반 아이들에게 써준 시모음집이다. 시만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주고 받은 편지와 메일, 문자가 수록되어 있다. 시를 쓰기 위해, 아니 그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주고 받은 이야기는 시를 읽는 재미 이상이다. 무기력하고 다소 삐딱할 것 같은 전문계고 아이들에게 펼치는 안선생님의 애정공세는 무한리필이다. 상대가 어찌 반응하던 해줄 수 있는 게 사랑뿐인 이 못 말리는 선생님은 그래서 선생을 너를 위해 먼저 태어난 사람 이라고 믿는다.

너를 위해 먼저 태어난 사람, 안선생님의 제자 소희는 말한다.

학교 생활하면서 언니들한테 혼나고 선생님들한테 혼나고 그래서 학교 다니기 싫고 나쁜 마음 가지게 되는데 착한 우리 준철 선생님 보고 이러면 안되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 너무 착해서 나쁜짓 미안해서라도 못하겠어요.

교육이란, 아니 사람이란 무릇..

아침에 시를 읽으며 빨개진 눈을 보고 아이들이 수근거린다. 가을이다.

 

고민녀에서 희망녀로  

 

난 고민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지

내가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길을 가야할 지 모르겠는데

고민하지 않는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니까  

 

간호사가 되려면 자격증도 따야 하고  

영어도 잘 해야 하는데

다 못하는 것뿐이라고 

너의 첫 편지는

고민으로 시작해서 고민으로 끝이 났지 

 

그런 고민녀의 편지를 읽으면서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는데

아직은 불이 가 닿지 않은  

이제 곧 활활 타오를 것 같은

통나무가 생각났기 때문일 거야  

 

넌 보석이 되기 직전의 원석이랄까

넌 그러니까 누군가가

누구보다도 네 자신이

아직 너를 충분히 갈지 않았을 뿐

네 안에는 빛날만한 것들이 많다는 걸

난 알고 있었던 거지 

 

너에게서 온 두 번째 편지에는

마치 봄 언덕에 핀 제비꽃처럼      

희망이란 단어가 하나 둘 돋아 있었지

너의 생각 속에 핀 꽃들이

참 아름다웠단다

 

이제 너의 삶 속에서도

예쁘고 튼실한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너를 위해 먼저 태어난 선생인 나를 딛고

꿈을 이루어가기를

꼭 그럴 수 있기를.  

 

2012323

사랑하는 다영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담임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