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85-처음읽는 터키사-전국역사

짱구쌤 2012. 12. 31. 10:08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터키

[ 처음 읽은 터키사 / 전국역사교사모임 / 휴머니스트 ]

“또다시 기회가 된다면 성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 사이에 있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두 역사적 걸작을 하염없이 번갈아 바라보고 싶다.”

책임 집필자인 박인숙 선생님이 쓴 머리말 중 일부이다.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내가 나가 본 해외는 일본과 터키가 전부이다.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세례를 받아 ‘아는 만큼 보인다.’를 철칙처럼 따르며 나름 답사를 의미 있게 해왔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작년에 다녀 온 터키 여행은 그야말로 에펠탑여행(유명 관광지에 떼로 내려 단체사진 찍고 끝), 그것이었다. 도서관에서 슬슬 다니다 보자마자 그때의 부끄러움이 밀려와 주저 없이 골라 든 책이다. 이제라도...

이 책의 공동저자인 전국역사교사모임은 김남철, 선휘성 선생님 등 아주 존경하는 분들이 속한 대단한 모임이다. 이미 수많은 교과서급 책들을 내놓아 살아있는 역사교육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데, 이 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서구 중심의 세계사를 넘어 균형 잡힌 생생한 역사 집필’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았다. 3년여에 걸친 준비와 집필은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서 나온 성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는 터키 제1의 도시 이스탄불에 마주 보고 서 있다. 이스탄불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도시국가 ‘비잔티움’을 세워 번성하였으나 서기 330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1,100년 이상 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다 1453년 이슬람계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되어 ‘이스탄불’로 바뀌어 480년 동안 제국의 수도로 영화를 누린 곳이다. 성소피아 성당은 537년 동로마제국으로 불리는 비잔티움 제국이 세운 기독교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1609년 블루모스크를 그 앞에 세웠으니 동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거대 건축물이 한자리에 있는 역사적인 자리가 그곳이다. 터키는 이렇게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다. 그 곳에서 이쪽 저쪽 번갈아 사진 찍어주기에 바빴으니(물론 단체여행이기에) 저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한심한 코레아인들이라고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터키는 튀(투)르크이며 몽골의 돌궐족이 이주해서 세운 국가이다. 유목민족의 특성이 그대로 남아있어 터키 여행 중에는 몽골 초원을 연상시키는 대평원과 말과 양떼의 방목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국토의 여덟 배가 넓은 광활한 국토는 투르크 족이 이주해 오기 전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살고 있었다. 천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유목민 특유의 민첩성과 게릴라식 대응방식 때문이었다.

아타튀르크, 터키의 아버지란 뜻이며 터키인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스만이 5백년간 동서양을 아우르는 최강의 제국으로 이름을 떨치지만 점차 쇠락의 길을 걷는다. 지중해 패권을 가진 오스만 제국을 피해 대서양을 개척하던 서구는 르네상스와 신대륙 진출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혼란을 거듭하던 오스만 제국은 급기야 그 넓은 영토를 서구 열강에 빼앗기고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편에 섰다가 패전국으로 공중 분해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등장한 이가 케말인데 영국, 독일, 러시아 등 열강의 침입을 막고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더니 정체된 이슬람 술탄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의 토대를 만들기에 성공한다. 십자군 전쟁 이후 쉼 없는 체제 개혁으로 근대로 나아간 서구에 비해 전체적인 군주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슬람 진영은 점차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진다. 대다수의 국가들이 원리주의적인 정교일치를 외칠 때 터키만이 전제정치 타파와 세속주의(정치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를 통해 위기를 돌파한다. 그것을 이끈 이가 케말이다. 터키를 독립시키고, 전제정치를 종식시키고, 투르크 민족주의로 단결을 이루었으며 잃어버린 투르크 어를 대신한 터키어를 만들었으니 터키의 아버지라는 국민적 헌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디를 가나 아타튀르크는 추앙받는다. 진심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터키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문화의 융합 발전소다. 그 자체가 이미 박물관인 이스탄불은 곳곳에 동서양의 초절정 문화가 남아있다. 그리스 로마보다 더 많은 고대 유적, 세계 3대 요리라는 케밥으로 대표되는 맛있는 음식, 한국인을 형제국가라고 마냥 좋아하는 국민들, 흑해, 지중해, 에게해에 접해 있는 이국적인 휴양지를 고루 갖춘 터키는 매력적인 관광지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트로이의 목마 모형과 수피춤인 세마 철제인형이 당시 여행을 증명해주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천천히 8박 9일의 여정을 되집어 보았다.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이제야 여행을 끝마친 것 같다. 노벨상 작가인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자신과 자신의 도시를 혐오하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고 했다. 맞는 말이다.

2012년 8월 24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