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이것은 과학이 아이다-마시모
창조론, 평화의 댐, 황우석, 사이비과학 골라내기
[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 마시모 피클리우치 / 부키 ]
여기서 말하는 사이비 과학이란 지적설계론, SETI(외계생명체탐사 또는 UFO), 진화심리학, 점성술, 지구온난화 부정론 등을 말한다. 점성술이야 4,500년 전 바빌로니아에서 지금 사용하는 별자리 12개를 만들어 시작했으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평면(서로 수억 광년 떨어진 입체 항성들)임이 밝혀졌으니 논의할 필요가 없으나 나머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특히 지적설계론(창조론의 다른 이름)이나 지구온난화 부정론은 제법 그럴듯한 과학적 외피를 두르고 많은 이들에게 과학적 진리처럼 신봉되기도 한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달군 이슈 중하나였던 [시조새]가 발단이었다. 자칭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라는 창조론자들의 모임에서 교과서에 실린 시조새 관련 내용에 문제가 많으니 삭제해 달라고 교과부에 요구했고, 이를 교과부가 받아 들여 교과서 업체에 요구사항을 주문했다는 기사였다.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나온 지 150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실증적 자료와 과학적 탐구로 움직일 수 없는 과학적 논거로 자리잡았건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이 책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 사실이 과학으로 둔갑하는 현상에 대한 해답을 보여준다. 사실 이 책은 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가벼운 책으로 더위를 넘어보려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머리를 쥐어짜야하는 간단치 않은 책들이 연속으로 괴롭히긴 했지만, 그간 전문가(?)들의 과학적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 들여온 나의 무지를 상당부분 정리해주는 성과를 얻었다.
지적설계론은 창조론의 다른 이름이다. 창조론이 종교의 영역을 벋어나지 못하자 새로운 이론 체계를 도입하게 되는데 그것이 지적설계론이다. 이 복잡 다단한 자연계는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설계해 놓지 않았다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전제하에 진화생물학을 공격한다. 진화론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예를 들면 아직 충분히 발굴되거나 연구되지 못해 인류의 먼 조상으로부터 지금의 인간 사이를 촘촘하게 이어주지 못하는 것 등-들 때문에 진화론은 틀렸다는 것인데 유죄를 입증할 책임을 방기하고 피의자에게 무조를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검사의 논거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과학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자연주의, 이론, 실증주의) 중 어느 것 하나도 지적설계론이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창조과학은 전지전능한 신이 동식물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초자연성은 검증할 수 없을뿐더러 자연현상을 다루는 자연주의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지적설계론의 핵심 게념이다. 신이 설계하지 않고서야 동식물이 이렇게 복잡한 생체 메커니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도 틀렸다고 말한다. 고대 파충류의 턱뼈가 서서히 변하면서 포유류의 중이(中耳)가 된 것처럼 환원 불가능한 기관조차 기능을 바꾸고, 점진적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명백하게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나눌 수 있는데도 왜 이와 같은 넌센스가 반복되는 것일까? 저자는 미디어, 정치, 전문가 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이 선정성을 부추긴다. 몇 해 전 황우석 박사 사태를 떠올린다면 그때 우리 미디어가 해낸 일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다. 황우석을 국민적 영웅으로 한 껏 띄워 올린 미디어는 그것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이익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돈이 된다면 그것의 선정성, 비과학성, 비윤리성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적설계론의 주장이 참으로 허술하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꽤나 솔깃한 기삿거리가 아닐 수 없기에 미디어는 그곳을 과대 포장해서 선전하고 위치시킨다. 진화론 대 창조론. 여기에 가담하는 것이 정치 집단이다. 이른바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전문가 집단이 그 대표적인데 미국의 해리티지 재단이나 우리나라의 여의도 연구소, 삼성, LG경제연구소 등이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며 그 결과는 철저히 모집단의 이익에 복무한다. 이번에 시조새 사건을 일으킨 집단도 기독교 원리주의와 우익의 이익을 대변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와 활동가로 구성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망신을 당한 이번 사태가 장로 대통령 시대에 일어났다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기에 더욱 씁쓸하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각종 주장이 대부분 이산화탄소를 많이 사용하는 미국, 그것도 대기업 집단의 연구소에서 나온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편향적인 이론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생산되고 이의 상품성을 한껏 높이는데 미디어가 기여하고 자칭 전문가라 불리는 비전문가들에 의해 지원된다. 우리나라의 예를 든다면 80년대의 평화의 댐 코미디가 거기에 속한다. 독재자의 하수 연구 집단에서 말도 안 되는 북한 홍수 침공설을 만든다. 독재정권의 나팔수인 언론에서 무비판적으로 확대 생산하여 국민을 호도시킨다. 여기에 무순 무슨 토목학과 교수 등이 나와 이를 부추긴다. 북한이 댐을 방류하면 63빌딩의 반이 잠긴다는 친절한 도표와 함께. 4대강도 그렇지 않았나?
지금의 전문가는 예전에 말하던 지식인이 아니다. 지식인은 사회의 나침반이자 목탁이었다. 권력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들추고 대다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이들은 박사나 교수가 아니었어도 학문을 종합적으로 융합하고 분석하는 통찰력과 성실함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인을 신뢰했고 그들을 전문가로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문가는 다르다. 대부분은 자신의 학문적 우물에 갇혀(그것도 미시적이며 협소한) 사회를 읽지 못한다. 과학콘서트를 쓴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우리나라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로 TV, 골프, 연구프로젝트를 들었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폴리페서’, 과학자가 정치적으로 편향되면 과학이 설 자리가 없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판치는 미국에서조차 창조론은 법정에서 단 한차례만 승소했다.(1925년 테네시주. 그것도 1967년 판결이 번복된다.) 최근의 판결은 더욱 인상적이다. 조지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아주 보수적인 존슨 판사는 도버교육청 추진한 “지적설계론을 교과서에서 진화론과 같이 가르칠 수 있다.”는 방침에 대해 위헌 판결한다. 이른바 도버판결인데, 존슨 판사는 이 역사적인 판결을 위해 그간 과학이 쌓아올린 수많은 실증을 재판정에 모두 세운다. 자신이 이미 기독교도이기도한 이 보수적 판사는 양측의 과학자와 이론가, 주요 저서의 저자를 모두 불러 세운 뒤 평결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정경분리 원칙에 위배되며, 지적 설계론의 실증가능한 과학이 아니고, 그간 인류가 축적한 과학적 방법과 이론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교육기관에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삼성 장학생이라 불리우는 수많은 친재벌 판사들의 일관된 반노동 판결이나, 정치적 평결로 독재를 연장시켰던 부끄러운 이들에게는 두고 두고 새겨 보아야할 명판결이다.
이 책을 다 읽을 즈음 집 앞 도서관에 들러 한권의 책을 접했다. 천안함 사태를 다룬 책이었다. 과학자들의 소신과과 정치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충돌한 이 사건을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가르는 기준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가 나에게 꾸준히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여러분의 헛소리 탐지기는 켜두는 곳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 장치는 언제나 경고 상태로 설정해 두는 편이 좋다.”
2012년 8월 11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