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변방을 찾아서-신영복
변방의 작은 소리는 어디에 닿을까?
[ 변방을 찾아서 / 신영복 / 돌베개 ]
난 딱히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변방에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나의 자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거기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러냐고는 설명하지 못했다. 오늘 이 책을 덮으며 나름 나만의 변명과 논리를 세웠다.
“변방은 창조의 공간입니다.” 신영복님의 결론이다. 그가 20여년을 살았던 옥방은 우리 사회의 가장 먼 변방이다. 그가 옥을 나오고 또다시 20년이 흘렀지만 그의 시선은 늘 변방에 있었다. 그가 나를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난 늘 그의 주목을 받으며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지금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의 가장 큰 스승이다. 내 이성의 균형을 맞춰 세운 스승은 리영희 교수였고 내 삶의 좌표를 정해준 이는 신영복님이다. 오래 기다리던 그의 저작이 그래서 반갑다. 나의 지금 방황(?)을 알기라도 하듯 적기에 나온 책이다.
어마어마한 우주에 비하면 우리 모두는 변방에 사는 이들이다. 거대한 지구만 보더라도 아시아 끄트머리 작은 나라는 그 자체가 변방이다. 변방은 주류 담론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끊임없는 시도가 존재하는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공간이다. 이이와 사임당이 주류라면 허균과 난설헌은 비주류며 변방이다. 월북 작가로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벽초 홍명희의 문학비와 생가, 전주 이세종 열사와 김개남 장군의 추모비, 그리고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묘석 등이 저자의 여행길이다. 변방에서 요구하면 언제든 흔쾌히 응해주었던 신영복님의 글씨는 흔히 연대체라고(어깨동무체라고도) 부른다. 글 자 하나 하나의 완성도 보다는 전체적인 어울림에 그 의미를 더 크게 두는 것이다. 서로를 보완하고 의지하며 하나의 의미를 완성해가는 그의 글씨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저자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견고한 벽을 깨트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캄캄한 어둔 밤 작은 돌멩이가 거대한 벽에 부딪혀 내는 ‘작은 소리’는 그 견고한 벽을 알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라고 했다. 변방에서 일어나는 그 작은 시도들은 지금 주류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모순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데 적합하다. 그렇다고 무모한 시도로만 그 의미를 좁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안주하며 쇠락해(사실 그렇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지만)가는 중심부와 주류를 대처할 대안을 만드는 창조의 산실로 이해해야 한다. 사실 역사는 추락하는 중심을 대체할 ‘변방들의 약진’의 과정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변방이 창조의 공간이 되려면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만 진정한 변방이 된다. 선생은 그러한 콤플렉스로 조선의 성리학을 든다. 소중화라 자처하며 중국에 늘 콤플렉스를 가졌던 그들은 결국 교조적 틀에 갇혀 시대에서 도태된다. 변화와 역동성, 전진과 회한, 반추와 되돌아봄 그것이 변방의 역할이다. 그 속에서 주류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창조이며 창조야말로 저항이다.(여기에서 저자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인용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여기에도 소개되어 있다.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자로 나뉜다. 현명한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맞추는 사람인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자기에게 세상을 맞추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러한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변화하여 간다.”
모내기를 모두 마쳤다. 교장이 못줄 잡고, 교감은 아이들 씻기고, 학부모는 국수 삶아 먹이고, 선생님이 날라 준 모로 아이들이 서툰 모내기를 했다. 300평 논을 다 했다. 변방에서의 작은 소리가 멀리 퍼졌다.
2012. 6. 9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