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름다운 비행

짱구쌤 2024. 12. 5. 16:17

 

3학년 꾸러기들과 고된(?) 일과를 마치면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된다.

이곳 별량으로 이사하고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다. 붉게 물들어 가는 첨산 하늘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동안, 고요를 해치는 흑두루미의 비행이 시작된다. 아침 일찍 순천만 갯벌을 떠나 인안뜰, 벌교습지, 고흥, 별량들녁으로 먹이 활동을 나갔던 가족들이 다시 어스름 저녁 잠자리로 찾아가는 시간이다.

녀석들의 비행은 무척 조직적이면서 아름답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여느 철새들처럼 V자 편대 비행을 기본으로 하지만 그것은 수시로 모양과 크기를 달리한다. 가끔은 우두머리를 교체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거센 바람을 나눠 맞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편대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돌발 행동을 하는 도전자들이 나올 때면 무리 전체는 큰 울음으로 응징하며 제자리를 찾아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녀석의 도전이 한 번이라도 성공하길 바라며 쳐다본다. 큰 무리로 보이는 비행도 작은 가족 단위가 합쳐져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세 마리에서 다섯 마리 단위로 나뉘어 각자의 먹이터로 분리되는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처음에는 그냥 꾸룩꾸루룩 소리로만 들리던 그들의 소통방식이 실은 무척 요긴한 대화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편대 모양을 바꿀 때, 낙오자가 생길 때, 우두머리를 교체할 때, 다른 개체가 접근할 때, 가족 단위로 나뉘거나 전체로 합쳐질 때는 반드시 신호음이 들린다. 무슨 이유로 무리에서 낙오된 녀석은 쉼 없이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아침과 저녁 이동 시간에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날개짓이 바빠지지만, 나른한 오후 그들에게도 여유가 주어질 때면 편대 연습, 선두 연습을 시키는 가족 단위 비행을 한참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곳에서 거의 30분 정도 비행 연습을 하는 흑두루미 가족을 지켜본 적도 있다. ‘흑두루미 멍이다.

마당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두 번째 하루를 위로하는 익숙한 클래식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흑두루미야, 너희들도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