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 문학동네 ]
이런 차분함이라니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고 한 달이 지났다. 초기의 독서 열풍은 조금 식은 느낌이지만 호들갑스럽지 않고 차분해서 좋다. 수상자는 딱 한 번 노출되었을 뿐 잠적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덩달아 사회도 가만히 수상 의미를 살펴보고 조용히 작품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나도 놓았던 책을 읽으며 고통스럽다. 무임승차는 없으며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고통뿐’이라는 평론가의 말에 수긍한다.
어떤 고통은 어줍잖게 알아서 문제이고, 또 어떤 고통은 두려움 때문에 닿을 수 없다. 나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서, 이런 차분함과 지연된 축제가 아니면 짐짓 모른 체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나와 같은 부류의 독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듯 집요하리만치 느리게 치열하게 그 고통 속으로 걸어간다.
제주의 처연함
신혼여행, 워크샵, 수학여행으로, 그냥 바람 쐬러 다녀와도 아련한 그리움을 주는 곳, 중산간의 아름다운 목장, 돌무지 마을 곳곳의 건천, 눈부신 백사장에서 삼만 명이 학살되었다. 공항의 활주로에서 뼈 무더기가 나왔고, 천연동굴은 공동묘지가 되었다. 소개와 소탕, 절멸과 몰살이 일상이었던 섬에서 그것을 증언(못)하고 (못)견디며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도,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을 것 같은 홀가분함의 밑바닥에도 슬픔이 남았었는데, 작가는 그것을 ‘사랑에 대한 이야이기’로 읽히기를 바랬다. 작가 자신이 고통스럽게 천착하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소년이 온다’에서처럼 이곳에서도 깊이 공감되었다. 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그는 사력을 다해 글을 쓰기 때문이리라.
사력을 다하는 사람
손칼국수 반죽, 대장간의 망치질, 물류 창고의 상자 쌓기 등 ‘세상에 이런 일이’에는 수십 년 그 일을 해서 도가 튼 사람들이 나온다. 하나같이 감동적인 이유는 그들의 눈빛과 유연한 손놀림이었다. 누가 뭐래도 내 일을 한다는, 이 일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 말이다. 25년 전 일본 소학교에서 만났던 츄리닝 차림의 40대 남자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죽을힘을 다해 가르칩니다.” 사력을 다해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사력이 강퍅하지 않게, 누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끝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강 작가의 사력은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무엇이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중심부를 향해 나아간다.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사력이 필요한 것이고, 마다하지 않고 고통스러워한다. 그것을 판타지와 시적 언어로 내보인다. 그래서 아름답고 선하다.
환갑까지 세 권의 책을
작가의 소망은 6년이 남은 환갑까지 세 권의 책을 내는 것이라고 했다. 두루뭉술하지 않고 구체적이다. 수상 직후 작가의 생가터를 사들여 북카페를 조성하겠다는 광주시의 달뜬 구상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주춤한 것처럼, 자신보다 더 들떠있는 세상과는 별개로 그는 지금도 작업실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나도 작가의 멋짐에 끌려 구체적인 구상을 한다. 퇴임까지 6년간 여섯 권의 [어깨동무]를 내고 싶다. 그보다 먼저 4,200시간 이상의 수업을 할 것이고, 1,000회 가까운 아침 차를 준비해야 한다. 하여 마음을 단단히 하고 다리와 목소리의 힘을 유지해야 한다. 벗어나고 싶은 것들, 기억해야 할 것들과 작별하지 않는다.
2024. 11. 20.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