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짱구쌤 2018. 3. 3. 12:06

 

 

전체를 보는 눈, 버드뷰

[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 이소영 / 홍익출판사 ]

 

어려운 일, 평범하게 살기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그럼 그냥 하시면 돼요. 삶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저명한 누군가의 말로 듣고 넘길 수 없는 힘은, 그녀가 75세에 시작한 일을 101세까지 멈추지 않은 데에 있다. 시골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10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며 농촌 일과 뜨개질로 75년을 살 때까지 미술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관절염으로 더 이상 뜨개질이 힘들어지자 시작한 그림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날 것의 예술을 보여주어 이른바 아웃사이더 아트로 불리게 되었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는듯한 그녀의 그림은 100년 전 미국을 자세히 복원한다. 어릴 적 고향마을을 추억하며 자연과 사람, 일상을 기록한다. 26년 간 총 1,6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니 단순히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숭고함이 담겨있다. 평범하게 살았던(하지만 순탄치 않았다)일상들, 농장 이사하기, 양털 깎기, 단풍나무 시럽 만들기, 방아 찧기, 눈 치우기, 마을 축제 준비, 할로윈,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이 당시의 복색과 풍경 그대로 재현된다. 언뜻 보면 똑같은 분위기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중심과 주변이 따로 없고, 주인공과 조연이 필요 없는 풍속화다.

 

노인의 지혜는 전체를 보는 것

진정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며 그린 구도들이다. 지금 많이 쓰이는 헬리캠(드론)과 비슷한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새의 눈(버드뷰)으로 본 부감법이다. 조선 정조시대 화성행차도와 같은 의궤에서 많이 보던 그림이다. 전체를 조망하기에 적합하다. 마을 풍경을 담는 그림에도 어울린다.

그림에만 버드뷰가 필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학자들은 노인이 되어 시각과 기억력이 떨어지면서부터는 전체를 보는 능력이 커진다고 말한다. 디테일 보다는 스케일과 조망에 눈이 간다는 뜻일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당신과 맺어온 관계를 총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할머니의 말씀도 그림처럼 여유롭고 조화롭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요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좋은 하루였던 것 같아요. 이제 끝났고 나는 내 삶에 만족합니다. 저는 누구보다 행복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요. 나는 삶의 역경을 만날 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101세 생일을 보내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으니 천수를 누린 것이나, 그 오랜 생애동안 겪었을 고난들-다섯 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다 큰 딸도 잃고, 건강마저 악화된-을 마주하면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은 강인한 인생역정이 존경스럽다. 사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의 삶이 그러하였다. 오랫동안 정기구독하고 있는 월간지 [전라도닷컴]에 매번 등장하는 전라도 어매, 할매들은 또 다른 모지스이다. 다른 점은 모지스 할머니는 늦게나마 자신의 삶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 만족해 하는 자세이다.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

 

지금 할머니들 걱정할 때가 아니다

물론 난 아직 75세가 되지 않았고, 관절염으로 손발을 움직이는데 불편하지도 않지만, 앞으로 30년을 만족스럽게 살기 위해서 뭔가를 시작할 때는 된 것 같다. 시작하기에 앞서 몸을 가볍게 하고 채비를 갖추는 것이 순서인 듯하여 몇 가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한결 홀가분하다. 그리고 살살 걸으며 나와, 관계와 맞는 일을 찾아볼 작정이다. 60년 전,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모지스 할머니가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201833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