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우리는 항상 세 가지를 의심해야 한다.
[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이정모 / 비틀비 ]
자신의 눈, 자신의 기억,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
저자가 소개한 약학 칼럼니스트 정재훈의 주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본 것과 들을 것, 경험한 것을 맹신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주로 전하는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 사단이 생긴다. “내가 봤어. 내가 해봤어! 누가 그랬어!”를 당해낼 수가 없다.
저자는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확신에 대해, 비합리적 사실에 대해, 믿을만한 사람의 전언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 보라고 한다. 그것이 과학의 시작이며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글쓰기는 한없이 부러웠다. 훌륭한 자연과학자가 훌륭한 글쟁이를 겸하고 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개인적으로 글을 잘 쓰는 자연과학자들을 몇 몇을 알고 있다. 전 국립생태원장 최재천, 카이스트 뇌과학자 정재승,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가 그들이다. 이제 이정모 관장을 맨 앞자리에 추가해야할 듯싶다. 생활 속 갖가지 호기심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이를 사회상과 관련지어 마무리하는 실력은 가히 수준급이다. 과학적 지식에 재미, 거기에다 사회의식까지.. 다시 느끼는 人生到處有上手.
창의성은 심심할 때 나온다.
가장 반가운 것은 놀이에 대한 경험과 철학이다. 오징어, 삼팔선, 딱지치기, 깍두기 등 어릴 적 공터에서 놀았던 수많은 놀이가 소환되고, 놀면서 배우고, 다치면서 배우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놀이의 학습적 가치가 그것이다. 가장 긴 유년기동안 위험을 감수하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호모사피엔스가 월등한 신체적 차이를 극복하고 네안데르탈인에 승리를 거뒀다. 긴 유년기는 사회성과 창의성을 기르는 최적의 시기이다. 그런데 놀이가 사라지고 실패할 기회가 박탈되어가는 요즘 유년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놀이가 필요한 시대이다.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큼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드물다. H·O·T의 재결합과 컴백공연이 관심을 끄는 이유도 17년 전, 그때의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몰입하려고 해도 그들의 즐거운 파티에 동참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공통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치 시대에 독일 사람들도 그랬어!”
평창 올림픽이 마침내 끝났다. ‘영미’의 컬링, ‘아이언맨’의 스켈레톤, 믿고 보는 쇼트트렉 등 흥미진진한 볼거리와 감동을 준 드라마였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한 금메달 집착, 파벌과 왕따 등 개운하지 않은 뒷맛도 함께 맛봐야 했다.
독일 유학시절에 올림픽을 보고 흥분하는 저자에게 하숙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묻는다.
“금메달 딴 선수가 너희 고향 사람이냐?”
“아니오. 중요한 것은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겁니다.”
“나치 시대에 독일 사람들도 그랬어.”
결론은 ‘기본소득’
결론이 의외였다. 인공지능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노동조합은 필요가 없어지는데(자본주의의 붕괴?가 오는데) 기본소득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자가 내려야할 결론을 자연과학자가 선점한 것이다. 自然史 박물관은 멸종을 기록하는 곳이며 하여 自然死도 배우는 곳이라는 등 저자의 탁견은 이 책 여기저기에서 빛난다. ‘품위 있는 죽음’이 그랬고, 다음의 ‘오컴의 면도날’도 그랬다.
“복잡한 이론과 간단한 이론이 있을 때, 복잡한 이론이 맞는다는 확증이 없는 한 간단한 이론을 선택해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못하게 했던 전 국가보훈처장의 복잡하고 구차한 논리에 대해 저자의 일갈이 시원하다. 깔끔하게 가자!
2018년 2월 27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