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관찰
[언어의 온도 / 이기주 / 말글터]
거절1
보내주셨던 원고는 전체적으로 잘 살펴봤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 이렇게 책을 가까이하는 독자분들을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숙연해집니다. 원고는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을 적은 독서일기 형식이네요. 사실 이러한 글은 이미 많이 소개되어 지금은 몇몇 유명 저자를 제외하곤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가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눈 밝은 독자는 늘 좋은 글을 알아보고 신선함을 전파하며 그렇게 기어코 또 하나의 저자를 탄생시킵니다.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글을 참 잘 쓰시는데, 다 읽고 나면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이 아쉬움이 뭘까? 한참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 제게 떠오른 화두는 "어떤 대상을 설명할 때 그 대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대상은 읽고 있는 책이겠지요. 뜬금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별거 아닙니다. 선생님도 잘 파악하고 계실수도 있고요. 스스로를 객관화한다는 것이 참 어렵고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도 좀 더 스스로의 글을 감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은 명백히 그러그러하다 보단 읽다보니 그런 글이었네...라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읽다보니'에는 참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겠지요. 제가 감히 보내주신 소중한 원고에 가타부타 말을 보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좀 망설여지지만 출판을 전제로 출판사 문을 두드리신 점을 고려해서 짧게나마 말씀드렸습니다. 송구하고 양해 부탁드립니다. 물론 100% 제 개인 의견이니 일말의 참고 정도로만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무엇보다 보잘것없고 아직 갈 길이 까마득한 조그만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위의 말들은 지극히 하나의 개인 의견일 뿐이니 괘념치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책은 밥과 같다고 했습니다. 밥 한 끼 잘 먹는다고 얼마나 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하지만 한 끼, 한 끼가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선생님의 꾸준한 독서 한 끼를 마음속으로 늘 응원하겠습니다.
거절2
저는 개인적으로 지대넓얕, 알쓸신잡 같은 책이나 프로그램을 더는 보지 않습니다. 티비를 볼 시간이 턱없이 없기도 하지만, 인문학의 대중화가 진행됨에 따라, 누구도 바라지 않았고 예상치 못했지만 나타난 현상이 '대중의 지적 구경꾼화'인 것 같았습니다. 프로 같은 아마추어도 늘어나는 건 고무적이지만, 무늬만 똑똑한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요. 뭐든 해보면 더 잘해보고 싶고, 그래서 더 하다 보면 어려운 문턱을 여러 차례 넘어야 하죠. 공부도 마찬가지인데, 공부의 기본 중 기본인 책읽기는 액세서리처럼 되어가는 것을, 어쩔 수 없으니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묵직한 책이 있으면 가벼운 책도 있어야지, 하는 차원이 아니구요. 선생님의 원고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이 읽어 주세요. 해서, 저는 '유명인사의 독서'류의 책은 몇 권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책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 과학책이 너무 어려워서 안내서가 있으면 좋겠어, 라고 한다면, 관련된 여러 책들 중 한두 권의 길잡이 도서만 잘 선정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러고 나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머리에 '스팀'이 날 정도로 읽으면 되지 않을까요? 벗들과 함께 읽으면 오래 갈 수 있어 좋겠고, 선생님처럼 독서활동을 하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막걸리 독서>는 좋은 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글들을 꿰는 열쇳말로 생성된 메타원고가 만들어진다면 더욱 찐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열쇳말이 무엇일지는 선생님이 가장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들이 넘치는 시대에, 그래도 책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파고 들만한 책을 내고 싶은 것이 ***의 출판방향입니다. 어찌 보면 그저 당연한 얘기입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지난 여름에 벌렸던 거사(?)에 대한 답변들이다. 대부분 [복사하기]와 [붙여넣기]였지만 이 두 출판사의 거절은 정중했다. 그리고 이제 프로들의 조언을 천천히 곱씹는다. 큰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관찰
이기주의 글은 어디선가 본 듯한, 쉬운 글들이 대부분이다. 한창 거절 답변이 쇄도할 때에는 ‘뭐 이렇게 쉬운 글도 출판되는데’라며 스스로를 강변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정말 큰 차이는 ‘관찰’이라 생각한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건이든 천천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는 힘, 젊은 작가 이기주의 깊이이다.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꽃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
-신영복
2017년 10월 6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