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짱구쌤 2015. 12. 13. 20:53

 

 

누구로부터 배우는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승효상 / 컬처그라퍼]

 

집짓기의 어려움

아파트 살이에 지쳐가면서 자연스럽게 마당이 있는 집을 찾는 중이다. 마음에 드는 땅만 있으면 집을 지어야겠다고 의기투합한 마눌님과 주말마다 땅 보러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고. 작년 겨울에는 서울 건축박람회도 다녀오고, 여기 저기 책자를 통해 살고 싶은 집의 아웃라인도 수 십장 그렸다. 즐거운 여가생활이었다.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고 매물로 나오기만 기다리던 중 드디어 연락이 와서 부푼 꿈을 안고 계약을 하기 직전, 집사람이 반대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조금 시끄럽고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같이 살 집인데 누군가가 싫으면 더 이상 진도는 끝. 그래서 지금은 동력을 잃고 손을 놓은 상태다. 그런데 이렇게 또 건축가의 책을 읽고 있으니.. 집 짓고 사는 사람은 다 위대하다!

 

정기용과 김진애, 김수근

건축가는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한 정기용과 똑 부러지는 국회의원 김진애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아참, 김수근. 작가 승효상은 김수근 밑에서 15년간 공부한 건축가다. 유홍준의 책과 노무현대통령의 묘로 익히 들은 바 있지만 막상 책은 처음이다. 건축가의 글이 이리도 훌륭하니 작가들은 뭘 해먹어야 하나? 그가 국내외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본 건축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베를린을 여럿이 여행하는 것, 그것은 야만이다.(79)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많지도 않은 해외여행에 단체로 끼었다가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온 기억이 대부분이다. 여행이란 자신을 성찰하는 것인데, 여럿이 하는 여행은 그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수도원 여행을 특히 좋아한다. 고립무원의 오지를 찾아가고 거닐며 오래된 것들에서 그들의 삶을 느끼고 자신을 돌아본다. 어떤 이는 그를 일러 건축으로 수도하는 사람이고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한 건축가의 수도록(修道錄)이라 불러도 된다.

 

오래된 것들

그가 스승인 김수근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홀로 나아가야 했을 때, 종묘에서 새로운 방향타를 정했다고 한다. 종묘정전 앞의 비워진 공간, 채움을 절대 목표처럼 삼는 현대 건축에 대한 자기 정체성의 발견이었다. 병산서원, 소쇄원, 부석사 등 오래전부터 우리 건축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비움. 나도 오래된 것들을 사랑한다. 폐사지에서 깨진 기와 조각만 봐도 가슴이 뛰고 설렌다. 박노해의 표현처럼 시간을 견뎌낸 것들,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들은 다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에 드는 표현이 있다. 자기 시대의 풍상을 온몸에 새겨가며/옳은 길을 오해 오래 걸어나가는 사람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나에게서 배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는 누구로부터 배우는가? 라는 질문에 자기가 쓴 소설로부터 배운다고 답했다고 한다. 저자 승효상 역시 이제는 내가 지은 건축으로부터 배우고 배운다. 그러나 그보다 내게 더 큰 가르침을 주는 것은 나의 일상이다.”라고 했다. 사실 나도 내가 쓴 글들을 가장 많이 본다. 그 어느 책보다 자주 보는 것이 그것인데, 스스로 조금 멋쩍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그것을 통해 가장 많이 힘을 얻고 배운다. 저자는 건축가로서 선암사를 부석사와 함께 가장 사랑하는 절집이라고 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선암사 예찬과는 다른 시선이 있었다. 책을 놓자마자 달려간 일요일 오후의 선암사는 한가롭고 고요했다. 그는 어느 한 부분을 떼어 놓더라도 전체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선암사를 이야기했다. 봄 매화와 각종 꽃, 아기자기한 절집 구조만 늘상 보고 왔는데 정말 새로운 마당과 골목이 거기 있었다. 역시 새로운 맛이다. 올 겨울에는 종묘를 만나러 서울 한 번 다녀와야겠다. 김수근의 [공간사옥][경동교회]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조각가 김경민의 작품 순례도 하고.

20151213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