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담론
자기(自己)만의 이유(理由), 자유(自由)
[담론 / 신영복 / 돌베개]
[어깨동무] 20주년과 제호
첫 발령지인 섬마을 소안에서 첫 번째 발행된 학급문집 어깨동무가 20주년을 맞이하던 2013년 겨울에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던 신영복 교수께 한 장의 편지를 보냈다. 약간 취한 상태에서 쓴 그 편지는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교수님! 어깨동무 20주년을 축하해 주세요. 전라도 촌 선생에게 제호 하나 써주십시오.”
일주일 쯤 지난 어느 날, 학교로 도착한 등기우편에는 [어깨동무] 붓글씨 3장이 쪽지와 함께 들어있었다.
“이장규 선생님, (중략) 건승을 빕니다.”
“아!.......”
일면식도 없는 무례한 사람이 받은 것은 선생의 멋진 글씨만이 아니었다. 어른의 큰 품이었다.
한발걸음과 목발
1988년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시작으로 저자의 책은 대부분 읽었다. 거의 3-4번씩은 보았을 것이다. 늘 가까이 두고 살폈으며 지인들에게도 책을 선물했다. 그렇다. 나에게 신영복 선생은 인생의 스승이다. 저자는 먹물 덜 빠진 채로 감옥살이 하던 때에 ‘한 사람의 인생’을 들어주면서 가장 큰 공부를 했다고 말한다. 가치 판단 없이 그 사람의 생을 온전히 다 들으면 거친 말도 다소 과장된 행동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 책과 머리로만 이해했던 세상이 사람과 관계에 의해 비로소 온전하게 보였다. 27년 전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 이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까지 선생의 책이 나에게는 위태로운 한발걸음이 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해준 목발이었다.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성찰하게 만드는 목발.
대인춘풍對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직업상 다른 이의 흠이 보이고 자꾸 지적하려는 유혹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성을 경계한다. 오늘 점심 먹을 때에 가르치는 한 아이가 “늙으니까 좋으시죠?” 하고 말했다. 다른 때 같으면 “그 말버릇이 뭐냐? 어른한테” 했을텐데, 밝게 웃으며 장난스레 물어보는 그 아이의 속마음이 읽혔다. 선생님이 여러 면에서 부럽다는.. 그래서 대답했다. “그래 좋다. 늙으니” 나이 먹어가니 좋은 점이 이런 거다. 조금씩 관대해지고 상대방의 의중이 읽힌다는 것. 누구나 꽃이란다. 피는 시기가 조금씩은 다른, 빛깔과 향기도 조금씩은 다른,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어린 꽃들과 지내는 행운을 23년째 누리고 있다.
자기의 이유, 自由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 하나씩은 갖자”
2015년 5월 27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