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공감
들러리가 되어도 마땅한 사람은 없다!
[삼색공감 / 정혜신 / 개마고원]
차두리와 차범근
며칠 전 차두리가 13년간의 국가대표를 공식 은퇴했다. 히딩크 사단의 막내로 국가대표가 되어 [차미네이터]로 불리며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의 모습을 볼 수 더 이상 없을 것 같아 많이 아쉽다. 특히 지난 아시안컵에서 그가 보여준 3‘5세의 질주’는 보는 중년들을 뭉클하게 했다. 불세출의 축구 영웅인 아버지 차범근의 그늘에서 차두리라는 이름을 분명히 하고 살아 온 그가 짠하고도 대견하다. 저자 정혜신은 9년 전 이 책에서 특별한 아버지를 두고도 자신만의 색깔로 힘차게 달려가는 평범한 아들을 대견스러워하며 그를 응원하였다. 9년 이 지난 지금, 사람들에게 ‘차범근의 아들’이 아닌 국가대표 ‘축구로봇’ 으로 기억시킨 차두리의 성장을 보며 이를 예견한 저자의 혜안에 믿음이 간다. 꽤 지난 저자들의 책을 읽으면 나름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독자들의 권리다.
‘치유’가 아니라 ‘통과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은 지금 안산으로 이주하여 세월호 유가족들을 돌보고 있다. 억장이 무너지는 그들에게 지금은 치유가 아니라 온전하게 ‘통과’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혜신은 고문피해자들과 5.18 피해자들을 상담하고자 [진실의 힘]을 만들었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치유공간인 [와락]을 운영하고 있다. 잘 나가던 기업CEO와 임원 정신상담가에서 사회적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거리의 의사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치열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저서 [사람VS사람], [남자VS남자], [홀가분]은 대부분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남자전문가이다. 최고의 인물 전문가인 강준만 교수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일관성을 따져 묻는다면, 정혜신은 정신과 전문의답게 무의식적인 심리부터 그들의 개별성을 디테일하게 살핀다.
자기 통제권
연구에 의하면 가장 장수하는 직업군으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뽑혔다고 한다. 완벽하게 자기 결정권과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그런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성공하려고 하는 이유를 저자는 [자기 통제권]으로 설명한다. 자기통제권 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의 속성상 정치인이나 CEO들의 비서나 운전기사들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직장이던 가정이던 구성원들에게 많은 자기통제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 조직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제일의 조건이다. 그래서 학교도 권한이임이나 집단 지성이 더욱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교실에서는? 아이들은? 자기통제권이 있을까? 일사분란, 일목요연을 좋은 학급의 조건으로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이유도 그것이 갖는 자기결정권 부재로 설명할 수 있다. 자기통제권을 갖지 못하고 선생님의 ‘통치’로 이뤄지는 ‘침묵의 질서’
삶의 맹목성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이 있다. 맹목은 위험하다. 역사가 그것을 충분히 증명한다. 히틀러 시대 독일 국민들이 그랬으며, 제국주의 일본의 천황의 군대가 그랬고, 분단시대 서북청년단의 만행이 그랬다. 5.18때 공수부대, 5.16때 정치군인도 그렇다. 일상에서 맹목적인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를 답답하고 피곤하게 한다. 맹목은 성찰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맹목은 보수우익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진보정당의 해산이라는 유래 없는 폭거 앞에서도 우리는 우리안의 맹목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인지지 속에 상식적인 비판의 실종, 상대편에 대한 마타도어가 난무하지는 않았는지. 나부터 돌아본다. 전교조, 참교육, 혁신교육... 삶이 균형추를 잃고 맹목적이지 않도록 눈 크게 뜨고 두루 살표볼 일이다.
의사이기 이전에 공화국의 시민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을 조롱하는 일베들의 폭식, 공권력을 앞세워 자행한 고문이나 조작, 비이성적인 색깔론 등은 우리 사회가 인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쌓아온 수많은 노력들을 무력화 시킨다. 저자는 내담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일정정도 유지해야 하는 정신과 전문의이지만 그들과 함께 이 시간을 통과하는데 몸과 마음을 내던졌다. 어떤 전문의들은 그것이 의사로서 적절치 않다고 점잖게 조언한다. 정혜신은 의사이기 이전에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묻는다. 우리는 함께 존엄할 수 없는가?
결론은 침묵의 날
9년 전의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주성영, 정동영, 김근태, 노무현, 유시민, 김용균, 김원웅, 김홍신, 노회찬 등-은 반갑고도 새롭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아직 현역인 이들도 모두 저자의 충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고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의 속성. 점점 동료들 속에서 말이 많아지는 내가 싫다. 중언부언하고 일일이 확인하려 드는 그 못된 샌님 기질이 맘에 안 든다. 50대 중반에도 후배들과 잘 어울리는 어느 개그맨의 비결은 자꾸 말하려드는 자기의 하벅지를 꼬집는 것이라고 했다. 회의에서나 술자리에서나 입은 닫고 지갑은 열자.
2015년 4월 19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