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사이언스
과학과의 아름다운 연애
[원더풀 사이언스 / 나탈리 앤지어 / 지호]
결혼과 연애
“왜 그런 재미없는 과목을 들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난 과학이 좋아. 난 과학을 신뢰해. 정말이야. 과학은 왠지 날 낙관적으로 만들어. 내 인생을 좀 더 논리정연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그러면 과학자가 되지 그래?”
“나는 아름다운 연애를 결혼이라는 형태로 망쳐버리고 싶지 않아. 난 내 자신이 뛰어난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
저자가 친구와 나는 대화이다. 그는 [뉴욕타임즈]에 과학 기사를 쓰는 작가가 되었다. 퓰리처상의 권위를 알지는 모르지만 그의 책을 보건데 전문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이에게 수여하는 상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과학을 결혼과 연애에 비유한 것은 참 멋지다.
과학에 대한 콤플렉스
장하준 교수의 동생으로 [과학, 철학을 만나다] 강의를 한 장하석 교수는 과학자다웠다. 과학자 특유의 어눌함에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강의는 흥미로웠고 당연히 그의 책은 구입 1순위가 되었다. 그렇게 구입한 책은 재앙이었다. [온도계의 철학]은 과학자 뿐 아니라 입문자나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내게는 오르지 못할 성이었다. 비단 그 책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졌던 과학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구입한 과학 관련 책들은 나에게는 하나같이 원서와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구입한 이 책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그간 과학책과의 불화가 꼭 내 탓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미있었다. 그가 과학자가 되지 않고 과학 작가가 된 것이 과학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름다운 과학
작가가 작정하고 쓴 대중적인 과학책이다. 과학에 대해 무지를 넘어 막연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쉽고 친근하게 소개하기 위해 애쓴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한 쪽에 한 번 이상 나오는 문학적 표현이나 유머는 기본이고 일상과 과학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책의 전체를 관통한다. 하여 과학이 뜬금없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누리는 세상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가령 달까지 제트기를 타고 가면 20일 정도 걸리고, 태양까지는 21년이 걸린다라는 표현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이름이 ‘루시’가 된 것이 그 화석을 발견 한 날 텐트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비틀즈의 [다이아몬드를 가진 천상의 루시]라는 노래 때문이라는 에피소드는 이 책의 보여주는 미덕들 중 하나이다. “과학은 경직된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활동적인 발견의 과정, 과학은 생명체처럼 살아 숨 쉬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확률, 척도, 물리, 화학,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지질학, 천문학의 주요 내용을 다룬다. 전 과학 분야를 포괄하면서 몇 가지 주제에 집중하며 자잘한 질문을 쉴 세 없이 던지며 답한다. 그 중 물리와 화학, 분자생물학은 여전히 난공불락이었지만 나머지는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고교 시절 과학 선생님의 수업이 이와 같았다면 난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생명의 경이로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안 과학적 사실이 참 많다. 가령 달은 지구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이라든가, 혜성의 긴 꼬리는 태양 가까이에 다가서서 얼음이 증발해서 생긴 것 등 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안 것이 아니라 과학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기적’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 별 부스러기로 만들어진 내가 별을 자주 올려다보는 몇 초의 시간을 내지 않으려는지.. 매일 위치와 모양을 달리하는 달을 찬찬히 보노라면 단순한 관찰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바람 거센 겨울 들판에 나가 망원경으로 흑두루미의 날개 짓을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나는 알았다. 저 경이로운 생명이 지금 나와 함께 이 행성에 존재하고 있어 고마웠다. 그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2015년 1월 17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