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 메디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담당 비서관을 지낸 저자가 현대사의 두 거인과 나눈 ‘글’이야기는 삶이자 철학으로 읽힌다. 글과 말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 사람은 삶의 역정만큼이나 다른 글을 쓰고 말한다. 우선 띄는 것이 노대통령의 글쓰기 철학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강의 (1강)
0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0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0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0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0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06 쉽고 친근하게 쓰게.
0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0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0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음식에 비유한 글쓰기의 기술 (2강)
0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 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0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0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04 글의 시작은 에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0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0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아구찜이면 아구찜. 한정식 같이 이것저것 다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0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0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잖아.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 돼. 다 순서가 있지.
0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이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지. 글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참으로 기가 막힌 설명이다. 그의 말을 대통령답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그만큼 ‘팔딱거리는 말’을 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수긍할 만큼 생생한 말을 쓴다.
“사진 찍으러 미국 가지 않겠다.”, “편지 100통을 써도 배달부(언론)가 전달을 안 한다.”,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김대통령은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연설가이다. 연설한다는 사람치고 그의 연설 방식을 흉내 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라든가, “맞습니까?”등은 아직도 유효한 방식이다. 그가 쓴 글은 아름다음을 넘어 감동적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앞으로 군은 서울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북을 향해 모든 힘을 쏟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 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난 예전에 비교적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러지 못한다. 내뱉는 말이 갖는 두려움 때문이다. 호언하고 장담하고 선동하고 낙인찍는 것이 내 삶과 동떨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부터는 더욱 그렇다. 책임 질 수 있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 그러한 두려움이 나의 글쓰기를 필터링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쓰기의 법칙을 확인했다. KISS(Keep It Simple Short) 짧을수록 좋다. 주제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난 두 분의 자서전을 모두 읽었다. 박제화 된 먼 나라, 먼 시대의 위인 말고 내가 호흡했던 현대사의 생생한 두 거인은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자기 삶을 살았다. 스피치라이터 강원국은 8년 동안 편안히 쉴 수 없는 비상대기조의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을 지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그가 쓴 이 책은 그의 행운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좋은 책을 만났다.
2014년 7월 10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