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실제보다 더 리얼한 판타지
[백년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민음사]
마르케스와 마술적 리얼리즘
우연치고는 참, 서가에 오래 전부터 꽂혀있던 책을 집어 들고 한 두 페이지를 읽던 차에 저자가 운명했다는 외신을 들었다. 1982년 노벨상을 탔다기에 이미 고임이 되었을 거라고 단정했었는데 [마술적 리얼리즘]의 거장이 타개했다고 소식은 덧붙인다. 생소한 [마술적 리얼리즘]은 리얼리즘과 환타지가 결합한 소설 양식을 말한다. 이 둘의 경계는 모호하다. 몇 번이나 소설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것도 환상인가?’하면서 말이다. 이청준의 원작을 영화화한 임권택의 [축제]에서 할머니가 점점 어린아이처럼 작아진다는 설정이나,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에서 여주인공의 꿈 여정 등이 아마도 마술적 리얼리즘 정도가 될 듯싶다. 바리데기의 주인공이 배를 타는 장면에서의 비참함을 그대로 묘사했다면 아마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남미와 고독
이 책은 부엔디아 가문의 5대 100년에 걸친 이야기이다. 책 첫 장에 나온 부엔디아 가계도를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어려운 이름과 계보를 알 수 없이 복잡한 집안의 흥망을 다뤘다. 유토피아나 무릉도원쯤으로 보이는 마꼰다 마을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 의해 만들어지고, 외부에 열리면서 겪게 되는 부흥, 몰락에 가문의 주요 인물이 이야기를 이끈다. 가장 중심적인 인물인 2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서른 두 번의 반란을 일으킨 자유파 지도자로 나온다. 콜롬비아의 독립 이후 끊임없이 진행된 좌우 이데올로기의 역사가 반복된다. 실패로 끝난 반란 이후 대령은 고향 마을 마꼰도로 돌아와 칩거에 들어간다. 책의 제목 100년의 고독을 상징하는 이 칩거에서 그가 하는 일은 금을 녹여 황금물고기를 만드는 일의 반복이다. 권력을 상실한 혁명가의 고독은 남미의 그것을 떠올린다. 찬란했던 고대문명을 가졌던 남미가 서구의 침탈로 쇠퇴하는 과정이나 원래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보호라는 미명하에 소멸되는 역사는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과 같다.
관대히 용서할 수 있는 실수는 무엇인가?
어느 인터뷰에서 저자가 한 답이 걸작, “허리 밑에서 저지르는 실수!” 이 책의 미덕은 풍부한 유머, 남미 특유의 낙천성이 돋보이는데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 코드에 상당히 심각한 이야기가 술술 넘어간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근친상간과 성. 원시 부족의 특성인 근친상간이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도 유머 덕분. 자유로운 연애와 사랑은 권력과 더불어 인간의 기본적 욕구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송두율과 내재적 접근론
남미를 우리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작가는 <우리의 현실을 타인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행위는 갈수록 우리를 덜 자유스럽게 하며, 갈수록 고독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할 뿐> 이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수십 년 만의 귀향으로 주목받았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간첩 김철수라고 마녀사냥을 당한 뒤 강제 출국당한 일이 있었다. 노철학자의 참담한 추방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맨얼굴이었다. 송교수는 그 사회는 그 사회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획득하였다. 인류 보편주의가 갖는 서구 중심주의를 경계하고 각 사회가 가진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자는 철학법에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나이가 들수록 고독에 익숙해진다. 부산함과 번잡스러움을 피하고 싶어진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이 소중해진다. 내보이기에 충실했던 청춘의 날들도 좋았지만 내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중년의 시간도 나쁘지는 않다.
2014년 4월 30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