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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Ra)광야-박노해

짱구쌤 2014. 1. 13. 11:23

 

빛으로 쓴 시

[ 라(Ra)광야 / 박노해 / 나눔문화 ]

나는 ‘발바닥 사랑’만을 믿는다

머리는 너무 빨리 돌아가고

마음은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현장을 딛고 선 나의 발바닥

나의 두발에 찍힌 사랑의 입맞춤

그 영혼의 낙인이 나의 사진이다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 박노해

 

[노동의 새벽]의 박시인이 이제 지구 변방의 사람과 자연을 찾아다니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사진 작품집인 이 책은 그가 무엇을 지향하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발로 찍는 영혼의 사진’

 

학교 동료교사 모두와 세종시에서 열린 [작은학교교육연대 겨울 워크숍]에 다녀왔다. 엠티 가듯 가벼운 기분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프로그램은 빡빡한 일정의 연속이어서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어 모든 것이 다 이해되기도 했다. 늘 좋은 선물을 안겨주시는 분이 이번에도 이 사진집을 건네주셨다. 서울 갤러리에 가서 직접 사다 주신 사진집은 이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큰울림을 준다. 라(Ra)는 이집트 옛말로, 태양, 빛, 태양신을 만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발생시킨 중동 지역이 라광야인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중동은 서남아시아 지역과 이스라엘, 터키 일부를 말한다. 중동(Middle East)는 영국의 동인도회사에서 붙인 이름인데 영국과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고 동쪽 가까운 곳을 근동(Near East), 중간 거리를 중동(中東), 한국 중국 일본같이 먼 곳을 극동(Far East)이라 하였다. 서구중심 세계관이 낳은 이름이다. 이곳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라 불린다. 우리 한반도와 함께 말이다. 한반도는 양극체제의 대립으로 분단된 화약고, 중동은 석유자원의 침탈로 인해 생긴 화약고이니 위험의 우열을 가리긴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체제보다 밥이 먼저이고 보면 석유로 인해 겪고 있는 중동의 불행은 끝이 보이지 않아 더 답답하다. 고유 영토를 잃은 팔레스타인, 미국의 침략으로 추락하는 시리아와 이라크,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 쿠르드족을 찾아 그들과 함께 한 기록들이 실려 있다.

“나에게는 오래된 만년필과 낡은 카메라 하나뿐

나의 시는 작고 힘없는 사람들, 그 이야기의 받아쓰기이고

나의 사진은 강인한 삶의 기도, 그 영혼을 그려낸 것이다.”

80년대 수많은 청년학도를 노동현장으로 이끌었던 [노동의 새벽]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 우리 사회의 금기였던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사노맹 사건으로 긴 수배 끝에 붙잡힌 함평 출신 고졸 노동자 박기평으로 세상에 알려졌을 때 나는 뭔지 모를 희열을 맛보았다. 마치 한동안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며 각종 경제예언을 주도했던 [미네르바]가 전문대 출신 구직자로 밝혀졌을 때와 같은 희열, 가방끈과 간판으로, 과거의 허명으로 현재를 사는 이들(나를 포함하여)의 뒷통수를 보기 좋게 때린 쾌거 말이다.

 

폐차 직전의 현대 포터 트럭을 타고 시리아로 생필품을 구하러 가던 이라크 청년 둘은 [살라]시간이 되자 사막에서 차를 멈추고 내려 무릎을 꿇어 기도를 올린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올 때까지 일어설 줄 모른다. 폭탄 테러, 민족 분쟁, 여권 말살, 원리주의 등으로만 이해하는 이슬람과 중동에 대한 무지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사진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신 앞에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광야의 사람들에게” 지금도 우리에게 ‘다른길’이 있음을 발로 보여주는 시인에 감사한다.

 

[작은학교교육연대]의 고된(?)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어렵다고 하는 학교 혁신의 길에서 지치지 않고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당부했다. 잘 나가던 철학교수직을 내던지고 농부의 길로 간 윤구병교수, 마술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성장해가는 경북의 동갑 선생님, 죄충우돌하면서 단단해지고 있는 아줌마 선생님 모두 ‘다른길’을 걷지만 모두가 행복의 길로 가기를, 더불어 나도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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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3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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