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길귀신의 노래

짱구쌤 2013. 12. 15. 12:34

 

 

그가 지상의 내 모든 여행을 따뜻이 지켜주었다

[ 길귀신의 노래 / 곽재구 / 열림원 ]

 

길귀신. 조금 섬뜩한 이 말이 작가에게는 ‘시의 신’의 다른 말이다. 스무 살, 시의 열병을 앓고 난 뒤 도처를 걸은 그가 상처받고 절망하면서도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지켜준 수많은 길귀신 덕분이라고 했다. 그를 키워주고 지켜준 시공(時空)들. 식당 아줌마, 골목길의 노인, 구걸하는 아이들, 카레이스키, 백구, 동천의 카페.....

시인 김남주는 어느 책에서 그를 지켜준 길동무들을 이야기했다. 한밤의 반딧불이, 달빛, 풀벌레 소리, 살랑거리는 바람, 민가의 불빛, 잠자리를 준 착한 사람들... 수배를 피해 야밤을 다녔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길동무였을 것이다.

 

며칠 전, 2년 간 심부름꾼으로 있었던 모임의 송년회 날에 시 한편을 읽었다. 백무산의 [동해남부선]. 곽재구의 시평을 읽으며 목이 메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부쩍 눈물이 많아진 나를 보면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길 위에서, 삶 위에서 만난 수많은 것들에 대해 쉬이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이야 탓할 바는 아니지만 그냥 무력하기만 하다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시가 나오려나 보다. 시인이 가장 많이 쓰는 표현으로 하자면, 핍진한 삶이여!

 

와온바다. 곽재구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자 요즘 그의 시의 원천이다. 해질녘이나 달빛 좋은 날 가보면 좋은 그곳에 나도 가본 적이 있다. 가로등 16개가 길게 놓인 선창에서 한가롭게 낚시하는 모습을 보고 왔었는데 마을과 산등성이가 평화롭다고 생각했었다. 시인은 그 해변에 길게 들어선 마을들을 걸으며 백구를 만나서 비스켓을 주고, 작은 교회에도 들어가고, 바다일 마치고 돌아오는 할매와도 이야기하고, 노인당을 지키는 어르신께 인사도 한다. 골목길을 걸으며 시에 대해, 생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색하는 그에게는 늘 길귀신이 있다. 삶을 깊게 들여다보게 하는. 그리고 그 모든 길귀신에게 헌사한다. “당신은 내가 길 위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는 기차 입석여행을 권한다. 생이 권태스럽고, 지리멸렬하고, 자신의 육체가 젊은 날의 꿈에 비해 너무 비대해졌다고 느끼는 당신, 눈 펄펄 날리는 겨울날 하루쯤 입석여행을 해보시지 않을래요? 입석까지는 아니어도 나 역시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따로 시간을 내어서는 가지 못하지만 아이들과 일 년에 한 두 차례는 꼭 기차여행을 한다. 얼마 전 아이들과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광주에 다녀왔다. 거의 모든 역에서 쉬는 이 열차는 참 한가하고 여유롭다. 아이들끼리 마주 앉아 먹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정겹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기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여행자의 기쁨이 어느새 번져 있다. 이번 겨울에는 혼자 하는 기차여행을 가볼 작정이다.

 

“모든 기쁨은 눈물 근처에 있는 것이다.” 가수 조용남이 찾아온 후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삶은 기쁨과 고통,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이 반반씩 있는데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한테 너무 한쪽만 배워서 불행도, 고통도, 절망도 삶의 일부분 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 참으로 지혜로운 말이다. 삶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정직하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에서 쓰는 최고의 찬사는 “자이구루” -네 지금 모습이 참 좋은데 선생님은 누구시냐?- 뭘 잘못할 때 쓰는 말이 아니라 잘하라고 쓰는 말.

내가 잘 살게끔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드리는 인사 “자이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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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5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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