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편지의 힘!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고 / 현대문학 ]
나미야 잡화점이란 빈집에 세 좀도둑이 숨어든다. 방금 전 어느 집에서 여주인을 협박하여 약간의 금품을 강도질 한 후 고장 난 자동차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잠시 눈 붙이기 위해 들른 곳이다. 그곳 우체함에 날아든 몇 통의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30년 전 이 잡화점의 할아버지 주인이 꼬맹이들의 고민 상담에 답하면서 유명해진 상담 편지와 관련된 주인공들의 인생역정이 이야기의 골격을 이룬다, 아울러 이곳이 30년 시공이 멈춘 공간이란 사실을 알게 된 좀 도둑 세 명이 이전과 다른 황당한(화끈하고 솔직한) 답장을 보내면서 자신들 스스로가 위로를 받는다는 스토리가 살을 붙인다. 작가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 답게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엮어낸다. ‘아하’하는 감탄이 몇 번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것이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이야기의 중심부에 무명의 뮤지션과 음악 애호가가 등장하는데 이때 비틀즈의 이야기와 노래가 소설을 이끈다. 일본 작품 속에 흔히 등장하는 서구 취향적인 내용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읽을 때마다 조금씩 거슬린다.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는 서구에 대한 예찬과 따라하기는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가 많다. 하기야 그것 때문에 오늘의 일본이 있기도 했으니 무리도 아니겠다 하지만,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가 취할 것은 분명 아니다. 우리의 레드 콤플렉스 만큼이나 깊이 각인된 서구 콤플렉스이다.
편지의 힘을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편지쓰기를 엄청 좋아하는데 요즘엔 통 쓰지를 못했다. 교실 뒷벽에 편지함을 붙여놓았는데 처음에는 제법 이용하다가 다시 개점 휴업 상태다. 교무실에 내려가면 제일 먼저 개인함을 열어보는데 기다리는 편지는 도통 보지를 못한다. 내가 먼저 쓰지를 않았는데 어느 누가 편지를 쓸 일인가? 문자와 메일이 주지 못하는 감정을 편지를 고스란히 담는다.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는 그 좋아하는 술과 담배도 끊으면서 답장 쓰는 일에 몰두한다. 너무 하찮은 질문에도 성심껏 답변한다. “가령 시험을 잘 보고 싶은데 어쩌죠?”라는 편지에 “선생님께 나에 대한 문제를 내달라고 해서 100점 맞으세요.”라거나 “왕정치 선수처럼 외발 타법을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하니, “먼저 두발로 타격하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그러다가 한발을 들어보던가요?” 아이들이 가끔 나의 답장을 받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선생님께 받은 첫 번째 손편지 라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없는 빈 교실에서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편지는 내가 선생이 된 게 잘한 일임을 가끔 상기시켜 준다. 아마도 나미야 할아버지께 답장을 받은 사람들도 아이들처럼 좋았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고민을 써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그 자신 대부분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너무 잘 아는 할아버지는 그저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깊이 공감해 주는 일에 보람을 가졌다. 엊그제 아이들과 기차를 타고 광주에 다녀왔다. 모처럼 한 명 한 명과 나란히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큰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맑은 영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이 참 좋아서 말이다. 내일부터 다시 편지를 좀 써야겠다. 우선 해남의 그 후배부터 연락하여 2차로 이어지는 [너를 위해]를 듣을 기회부터 마련해 보자고 써 봐야겠다.
2013년 11월 24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