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매
카스를 끊었다!
[ 디지털치매 / 만프레드 슈피처 / 북로드 ]
스마트폰
무엇엔가 집중하다가도 늘상 시선은 핸드폰에 맞춰져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책장은 몇 장 넘기면 거의 자동적으로 손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급격하게 독서량이 줄어들었고 그 독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대충 훑고 있다. 남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상대방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카스를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자주 쓰던 편지는 가뭄에 콩나듯 띄엄 띄엄이다. 자투리 시간이나 여행할 일이 생기면 으레 책을 펼치거나 풍경을 감상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음악을 듣거나 SNS를 헤맨다. 1년 반 전에 구입한 스마트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길치
네비게이션을 쓰기 전에는 제법 길눈이 밝다는 말을 들었다. 한 번 간 길은 쉽게 찾아 갔었고, 그래서 초행 길에는 집중해서 방향과 길을 눈에 넣었다. 네비게이션을 쓰기 시작한 5,6년 전부터는 그것이 없으면 불안해 하고 실제로도 길을 잘 찾지 못했다. 심지어는 아는 길도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로 가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참 많았다. 주소와 위치를 유심히 보지 않으며 당연히 방향감각도 상당히 상실되었다.
멀티테스킹
학창 시절부터 라디오를 틀어 놓고 공부하거나 작업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학습과 일의 능률이 잘 오르는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프로야구 중계를 띄워 놓고 책을 보거나 독후감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들 녀석도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하곤 한다. 아무 문제없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내 어릴 적 모습이다. 이 책을 건네줄 생각이다.
통제력
교실이나 집에서 혼자 있으면 청소나 정리, 책읽기나 글쓰기를 하고 잠을 보충했었다. 지금은 맨 처음 휴대폰을 만지고, 다음은 텔레비전을 켠다. 그도 아니면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 감상을 한다. 다 심드렁해질 때야 책을 편다. 그래서 디지털 기기들의 간섭과 유혹이 비교적 적은 늦은 밤시간이 독서하는 시간이 되었다. 시간을 관리하고 우선 순위를 정하는 통제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남의 시선
물론 이전에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이었다.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고 되도록이면 칭찬 속에서 격려 받고 싶기도 했다. 스마트 폰을 사용한 후부터는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나 할까? 나의 글이나 사진을 통해 나의 일상이 남에게 소소하게 알려지게 되자,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나와 필요 이상의 시간을 보여지는데 할애하는 나를 발견한다. 불필요한 정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피곤하고 지쳐간다.
금단 현상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카페나 버스, 심지어는 도서관에서 한결 같이 머리 숙이고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찌릿한 전율을 느꼈다. 두려움과 답답함. 이 책을 읽으면서 카카오스토리(카스)를 지우고 카톡도 최소 그룹만 남기고 정리했다. 어제까지 소통하던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고 내 사진과 글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한 시간 동안에도 몇 번이나 눈과 손이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불안함과 초조함이 밀려든다. 금단현상인 것이다.
어른과 아이들
어른들은 이미 경험과 학습을 통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었기에 스마트폰의 악영향이 크지 않다. 오히려 SNS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사회적 관계가 좋기까지 하다. 하여 혹자들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사회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날로그 학습과 경험을 마친 어른들에 한해 유효하다. 그도 앞서 나의 일상을 주절거린 것에서 보았듯이 상당한 부작용을 감수하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 이르러서는 양상이 다르다. 아직 사회적 관계 형성을 마치지 못한 그들에게는 실제적 대면과 경험을 쌓을 시간을 대폭 빼앗기는 디지털 기기 사용은 제한되어야 마땅하다. 그럴 때만이 자기 통제력과 집중력 저하에서부터 온오프라인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참사까지를 예방할 수 있다.
페도스코프
발 모양을 찍는X레이 기계 이름이다. 신발을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30년 전까지만 해도 독일 구두 가게에서 고객 서비스 용으로 촬영을 남발한 이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사능에 노출되었는지 알 수조차 없다. 새로운 기기라는 매력이 그 위험성을 덮은 예에서 보듯,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의 편의성과 대세는 그 위험성을 단번에 뛰어 넘는다. 어떠한 참사가 준비되어 잇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 난독증, 집중력 저하, ADHD, 폭력성, 관계 기피, 우울증 등 그 전조현상은 차고 넘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유
유행처럼 리모델링 된 어학실로 인해 어학 교육은 진전되었나? 수많은 비디오와 시디의 홍수가 교육의 질을 높였는가? 저소득층 가구에 컴퓨터를 지원하면 정보 격차가 줄어든다고 한 말은 사실인가? 공부하고 책 읽을 시간에 게임만 하게 한 것은 아닌가? 저자는 의사이며 뇌과학자이다. 전 세계에서 수행된 디지털 기기의 악영향에 대한 수많은 보고서와 실험을 항목별로 제시하며 쉬운 문체로 설명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려는 교육 당국, 디지털 기기가 세상을 행복하게 바꿀 거라 광고하는 기업, 이들로부터 후원 받는 정치인들로 인해 이 위험성은 아무렇지 않게 묻히기에 우리가 자각해서 하루 빨리 실천하자고 선동한다. 디지털 기기를 아이들로부터 제한하는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학부모들과 협의하여 우리 아이들 실천 방안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1차만 한다!
카스를 끊고, 편지를 썼다. 스승의 날 받은 아이들과 부모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25통이나 썼다. 사실 고백하자면 난 디지털 치매보다 실제적인 치매가 더 걱정이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필름이 끊기고, 전에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은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 아는 전화 번호가 3개 밖에 없으며 취하면 참 가관이다. 술은 1차만 하기로 작정했다. 이러다가 진짜 카스(cass)를 끊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2013년 5월 18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