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16블루 드레스-알비 삭스

짱구쌤 2013. 2. 3. 15:34

 

이성과 열정이 조화로운 삶

[ 블루드레스 / 알비 삭스 / 일월서각 ]

웃음. 자신의 자동차에 폭발물이 터진 테러가 발생하여 한쪽 팔과 한쪽 눈을 잃은 사람이 병상에서 깨어나며 성호를 긋자, 걱정에 찬 주위 사람들이 “카톨릭 신자도 아니면서 왜 성호를 긋나요?”라고 묻자 “카톨릭? 그게 뭐지. 난 내 손으로 안경, 불알, 시계, 지갑이 있는지를 차례대로 확인했을 뿐인데..” 좌중은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헌법재판소 법관으로 15년을 일하며 세계에서 주목받는 헌법을 제정하고 이를 지켜온 알비 삭스에 대한 일화이다. 남아공에서 유대계 백인으로 태어나 인종차별정책인 아라파트헤이트에 저항하기 위해 아프리카민족회의에 가담하였다가 정보대의 차량테러로 한 팔과 눈을 잃었지만 넬슨 만델라 등과 함께 인종차별국가이던 남아공을 입헌민주주의 국가의 반열로 올려놓은 법률가이다. 세계 유수의 법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명판결을 수차례 하면서 명성을 높인 사람이다.

 

아라파트 헤이트, 넬슨 만델라, 데스먼드 투투 주교, 2010월드컵 정도로만 남아공을 이해하던 차에 그의 저작을 읽고 ‘알비 삭스’의 남아공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냥 저 먼 아프리카의 한 나라를 제대로 알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성과 열정을 조화롭게 삶에 녹여내는 드높은 인격의 소유자를 만났다는 반가움이 컸다. 이번 방학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으로는 더없이 좋은 책이다.

 

블루드레스,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다 붙잡힌 아프리카민족회의 여성운동가가 발가벗겨진 체 구금을 당하자 버려진 푸른 비닐봉지로 옷을 만들어 입어 수치심을 벗어났다. 하지만 결국 고문에 세상을 떠난다. 이후 한 예술가에 의해 파란색 비닐봉지를 이용한 드레스 작품이 제작되고 지금도 남아공 헌법재판소에 걸려있다고 한다. 지난 부끄러운 역사를 잊지 말자고.

그대의 용기를 기리는 비닐봉지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거리 곳곳에서 바람에 날리고

파도에 떠밀려 다니며

가시덤블에 걸려있다.

그 비닐 봉지를 모아 이 드레스를 만들어

그대에게 바치나니...

잘 가오. 그대여.

 

진실화해위원회와 우분투Ubuntu,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남아공은 이러한 나라 중에서도 가장 평화롭게 그러나 단호하게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곳 중 하나이다. 넬슨만델라 대통령에 의해 설치된 진실화해위원회는 과거 인종차별시대에 국가적 폭력에 가담했던 가해자들에게 참회와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자신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증언하는 사람들에게는 면책의 특권을 준 것이다. 피해자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아프리카인들의 우분투 정신 때문이다. ‘회복적 정의’나 ‘공생’정도로 번역되는 이 말은 응보의 원칙보다는 보상에 기초한 정의의 회복을 지향한다. 텔레비전에 나와 피해자 앞에서 끔찍한 과오를 인정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된다..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모든 국민의 한판의 씻김굿을 하는 것이다. 거짓을 증언하고나 감추면 그는 사면되지 않는다. 과거 억압의 시대에 저질러진 수 많은 테러, 살해, 고문 사건의 진상이 저절로 밝혀지기 어려운 현실적 고민에서 출발한 이 정책은 결과적으로 남아공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동성애자들의 혼인을 인정해야 하는가?

상속 재산을 배우자가 아는 동거인도 받을 수 있는가?

진실화해위원회의 사면 조처는 헌법을 저해하지 않는가?

대기업의 심벌을 페러디한 티셔츠 판매는 불법인가?

종교의 자유와 세속의 다툼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가?

국가의 토지에 불법적으로 주거 시설을 짓고 사는 무주택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에이즈 보균자의 항공기 승무원 취업 거절을 정당한가?

신부전증 말기 환자의 국가 의료시설 치료 제한은 합헌인가?

 

하나 하나가 남아공을 떠나 세계 어디서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일관된 입장으로 판결한 알비 삭스 재판관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모든 판결문은 거짓이다.” 연설장에 모인 청중을 술렁이게 한 이 발언은 “자칫 명료해 보이는 판결문은 사실 엄청난 갈등과 고민, 이성과 열정, 법과 삶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나온 산물이다. 심지어는 욕조 속에서 갑자기 떠오른 영감으로 작성한 판결문도 있다. 하여 그 판결문은 명료하지 않은 나의 고민과 삶이 다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거짓이다.” 헌법은 겸손하지 않아도 되지만 법관은 겸손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묻어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판결문을 통해 그의 개인적 경험(반체제 인사)과 헌법적 원칙 사이에서 고뇌한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동흡, 김용준. 헌법재판소와 관련하여 언론에 오르내린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직위를 이용한 땅투기나 위장 전입을 떠나 공과 사을 분간하지 못하는 도덕적 ‘안갖춤’도 백번 양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왜 상당히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우리의 헌법을 자랑스러워하며, 그것이 정의를 수호하는 첨병임을 의심하지 않는 따뜻한 재판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서글픔에 아프다. “헌법의 목적은 감당해야 할 불행을 구제할 수 있는 부정의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이 낙관주의자의 판결문은 참 아름답다. 올 겨울 가장 잘 선택한 책이 분명하다.

2013년 2월 3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