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말들의 풍경-고종석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은?
[ 말들의 풍경 / 고종석 / 말들의 풍경 ]
▪가시내-‘계집애’하고는 다른 純(순)과 愛(애)
▪서리서리-황진이가 쓴 사랑의 부사
▪그리움-결핍의 정서, 마음의 움직임
▪저절로-애씀과 집착을 넘어선 자연스러움
▪설레다-생의 밋밋함을 눅이는 ‘와사비’
▪아내-작가가 남자여서
▪가을-성함의 끝과 쇠함의 시작이 맞닿아 있음
▪넋-넋이 사라진 세상의 허전함
▪술-절제 있게 느릿느릿 마실 때의 술
임경선은 한겨레신문에서 가장 읽힘성이 좋은 필자이다.(내게는) 그녀가 쓴 [임경선이 만난 남자들]은 그녀의 연애담이자 남자 연구기이다. 야생의 그것들이 펼쳐 놓는 나약함과 무뢰함을 읽노라면 내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럽다. 그녀가 최근에 쓴 [고종석]은 떼 지어 다니지 않으면서 홀로 당당한 50대 고종석이다. “고종석이라는 남자는 예민하게 상처받을 것을 다 받는 것을 넘어 그 저변에는 늘 어딘가 불손해 보이는 자신감이 슬쩍슬쩍 엿보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연륜의 문제가 아니라, 비관을 바탕에 둔 낙관의 태도였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타고난 것 같았다.” 고종석이 궁금했다. 이전 한겨레신문에서 문화부기자로 있을 때부터 프랑스로 유학 가서 쏟아 놓은 많은 글들을 접했지만 책으로 나온 그의 진면목은 처음이다.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의 부제처럼 그가 쓴 59개의 글은 한국말을 매개로 한 언어학 에세이다. 소쉬르와 촘스키의 언어학 강의가 있는가하면 한글전용론과 로마자 한글표기법 같은 한글 정책이 나오고, 선언문과 연설문, 남북 헌법의 전문, 청산별곡에서부터 전혜린의 수필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의 진경을 넓은 스펙트럼으로 보여준다. 때로는 인물들이 갖는 정치성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풀어 놓은 말에 대한 회초리가 주를 이룬다. 그것은 위아래와 좌우를 가리지 않는데 전혜린의 글에는 ‘악문’, 평론가 김윤식에는 ‘설렁설렁한 평론’ 양주동에게는 ‘자기 과시의 우물’이라 일갈한다. 물론 글을 깊게 읽다보면 자신의 평가에 성찰이 빠지지 않기에 우리는 그의 균형감을 신뢰한다.
그렇게 조금은 날카로운 그가 평가한 몇 사람은 김현과 서준식, 정운영, 강준만이다. 김현에게는 “나이가 늘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이와 함께 푹 익은 인격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한 분야의 세속적 정점에 이른 이의 인격일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며 그의 저서 [말들의 풍경]을 가져다 쓴 근원에 감사하고 행복해 한다. 고종석 답지 않은 편애(?)다. 서준식의 옥중서한은 재일교포로서 공안사건에 연루되어 17년을 옥살이하며 쓴 한글 편지이다. 서준식은 7년의 옥살이 후 전향서를 작성하면 석방될 기회를 가졌지만 “나의 지상 목표는 ‘석방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하고 복역한다. 그의 동생 서경석의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이야기했듯 인간의 고결한 양심에 대해 풀어 쓴 그의 편지가 울림을 갖지 않을 수 없으리라. 강준만은 실증적 글쓰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그의 글을 ‘붙여쓰기’와 ‘흠집내기’로 평한 일부 ‘리무진 진보주의자’들과 달리 진가를 평가해 준 고종석이 정직하다.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정운영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명징함을 보여준 리영희 선생의 글과 함께 90년대 한겨레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운영의 냉철한 칼럼은 많은 이를 흥분시켰다. 나 역시 그의 글에서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그가 나중에 중앙일보로 옮겨 ‘전향’하자 많은 이들과 함께 나도 돌팔매질을 멈추지 않았기에 지금 고종석이 평가하는 그의 글과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가 말년에 보여준 신경질적인 ‘민족주의’와 ‘얼치기 진보주의자 비판’을 느닷없는 것이 아니라 “그는 일관되게 추상을, 관념을 사랑하며 그 관념의 사랑으로써 자신을 위안했는지 모른다. 단지 그 관념의 이름이 ‘노동계급’에서 '민족자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라고 변호한다.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공감한다. 나 역시 젊은 시절(지금도) ’정신의 불구‘상태를 가졌으니까. 고종석이 평가한 ’화사한, 너무도 화사한‘ 그의 명문을 다시 읽고 싶어 검색한 그의 책들은 모두 절판이나 품절이다. 안타깝다.
청산별곡에서 ‘ㄹ'과 ’ㅇ'이 보여준 탄력과 흐름으로 한국어의 도드라진 미적표본의 하나가 되었다고 평한다. 정말 청산별곡을 다시 읽으니 구르고 튀는 느낌에 즐거웠다.
“한국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조붓한 길이다. 시원하게 뚫린 한길이 아니다. 그러나 정성스레 닦아놓으면 그 길을 산책로로 골라 거닐 사람이 왜 없으랴?”
우리말을 너무도 사랑하는 고종석이 펼쳐 좋은 말의 향연을 다 이해지는 못하였다. 때로는 지적 호사를 보여주려는 유치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가 일관되게 보여준 ‘홀로 당당하기’의 전력을 알기에 그의 진지함과 순수함에 한 표를 더한다. 임경선이 찜한 남자이면 정말 매력적인 사람일 터.
2013년 1월 25일 이장규